"자동차를 대량 생산해 오토바이 가격 정도로 내리겠다. (중략) 우리는 진정한 독일 국민의 차, 폭스바겐(volkswagen)을 만들어야 한다."

1934년 3월 아돌프 히틀러가 베를린 자동차 쇼에서 연설한 내용의 일부다. 히틀러는 보통 사람도 탈 수 있는 실용적인차를 원했다. 포드가 30년 전에 미국에서 모델T로 한 일처럼 말이다.
실제로 히틀러는 이제는 늙어버린 헨리 포드의 조언을 듣기 위해 디트로이트로 대표단을 파견했다. 포드는 신차 개발을돕기 위해 1세대 독일인 이민자 엔지니어 몇 명을 독일로 보냈다. 몇 년 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니 결코 잘한 결정은 아니었다.
국민차는 페르디난트 포르셰가 발명했다. 포르셰는 10대 때부터 부모님 집에 직접 전기를 끌어올 정도로 공학에 소질을보였다. 그는 이런 재능을 바탕으로 아우스트로-다임러, 슈타이어, 다임러-벤츠 등 여러 자동차 회사에서 일했다.
포르셰의 천재성은 가솔린-전기 혼합차 시제품을 만든 것에서 드러난다. 무려 시대를 100년이나 앞서 간 하이브리드 엔진이었다. 아쉽게도 매우 복잡하고 비싼 것이 흠이었다.
독재자와 천재의 만남

1925년 다임러-벤츠에서 수석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포르셰는 한 자동차 경주에서 아직 신예 정치인인 히틀러를 만났다. 히틀러는 포르셰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이때 교감을 나눴기 때문일까. 1931년 경주용 차를 전문적으로 설계하는 회사를 차린 포르셰는 독일 사람이면 누구나 구매해 탈 수 있는 소형차 개발에 심혈을 기울인다.
소형차라는 발상을 추진하던 사람은 또 있었다. 자동차 잡지 편집장 요제프 간츠도 'Maikaefer(5월 딱정벌레)'라는 소형차 개발 계획을 세웠다. 비틀의 최종 설계안과 기계적으로 상당히 유사했다. 이 딱정벌레의 문제라면 창안자인 요제프간츠가 유태인이라는 점이었다. 그는 쫓기듯 독일을 탈출했다.
드디어 포르셰는 1934년 독일 내각의 운송부 장관에게 국민차 제안서를 제출한다. 사본은 히틀러에게도 전해졌다.
"제가 생각하는 국민차는 기존 차를 작게 줄이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기성의 차를 국민차로 만들 요량이라면 근본적으로새로운 사고가 필요합니다."
포르셰는 모양을 둥글게 만들어 공기 저항을 줄이고 후방 탑재 공냉식 엔진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대부분의 차가 전방 장착 수냉식 엔진이었으니, 정반대의 혁신이었다.
포르셰의 설계안은 기성 차들에 있는 것들을 없앴고, 무게와 공간을 아꼈다. 엔진을 뒤에 두면 하중이 구동 바퀴에 실려, 빗속이나 눈 위에서 견인력이 커진다. 포르셰의 구상과 설계는 사실상 한참 뒤에 미국인들이 타고 다닐 비틀의 최종안과거의 똑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국민차는 1937년 2월 베를린 자동차 쇼로 데뷔한다. 히틀러는 포르셰의 결과물을 칭찬했다. 1938년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히틀러는 "독일제 국민차는 꿈을 실현시킵니다"라며 국민차를 프로파간다에 사용했다.
국민차는 군용으로도 쓰였다. 미국의 한 공학저널이 1944년 노획한 차량을 기술적으로 분석한 "애초 국민차였는데, 군사 목적에 전용되었다"라는 내용이 흥미롭다. 미군의 지프는 4륜 구동인데, 2륜 구동인 국민차가 대등하게 전장을 누볐으니 국민차의 성능을 짐작할 수 있다.
국민차의 위기와 부활

제2차 세계대전이 전쟁이 끝난 뒤 국민차 공장은 영국이 관할했다. 영국 공병대 소령 아이반 허스트는 국민차 공장에서전차와 트럭을 수리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 출고하지 못한 국민차 몇 대가 눈에 띄었다. 곤충처럼 생긴 작은 차가 마음에든 허스트는 점령군과 장교들이 사용할 목적으로 생산을 재개했다.
하지만 전후라 부품이 부족했고, 있는 부품마저 직원들이 빼돌리기 일쑤라 공장 운영은 한계에 부딪혔다. 더이상 공장을감당할 수 없었던 허스트는 오펠의 사장이었던 하인츠 하인리히 노르트호프를 영입한다. 포르셰가 적임자였지만 히틀러와의 커넥션 때문에 수감된 터라 대안으로 노르트호프를 부른 것이다.
노르트호프는 같은 독일인 공장 노동자들의 군기부터 잡았다. 그렇게 노르트호프의 지휘 아래 제작된 초기 차량의 일부는 더 많은 차를 생산하기 위한 부품을 조달하기 위해 물물 교환으로 넘겨졌다. 사정이 나아지자 노르트호프는 직원들에게 매일 추가 배식을 하고 노동자들의 사택도 지었다.
국민차 공장의 브랜드가 폭스바겐이 아닌 포드가 될 뻔한 사건도 있었다. 1948년 노르트호프는 영국 당국의 명령에 따라 헨리 포드 2세와 만났다. 영국은 골칫덩이 공장을 포드에 공짜로 넘겨 버리려고 했다. 포드 2세는 포드의 부사장 어니스트 브리치에게 의견을 물었다. 브리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국이 우리한테 주겠다는 이 공장은 가망이 없습니다.”
1948년 6월 독일 정부는 화폐 계혁을 단행했다. 자동차 수요가 뛰었고, 노르트호프는 공장 지하실에 쌓여 있던 재고를전부 팔아치우며 기사회생한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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