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가 마주한 커다란 도전 과제는 세계적인 규모로 새로운 상상 속의 질서를 만들되 국민국가나 자본주의 시장에 기초하지 않는 것이다."
'사피엔스 10주년 특별판' 서문에 실린 글의 일부다. 저자 유발 하라리의 글이라 해도 손색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 이 글을 쓴 이는 하라리가 아니다. 인공지능 'GPT-3'가 쓴 글이다.
GPT-3는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하라리의 책과 논문, 인터뷰를 비롯해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무수한 글을 모아 서문을 완성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수정이나 편집도 없었다고 한다.
하라리는 '특별서문'에서 이 글을 읽고 "정말 깜짝 놀랐다"며 "정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말 AI가 이 글을 썼다는 말인가"라고 감탄했다.
그는 "글 자체는 잡동사니들을 조합해 만든 잡탕이다. 하지만 어차피 모든 글이 다 그렇지 않은가? 내가 '사피엔스'를 집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면서 "수많은 책, 논문, 인터뷰 글들을 모아서 서로 다른 아이디어와 사실을 결합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으니 말이다"라고 했다.
특히 그가 GPT-3의 글에 감탄한 것은 논리적 일관성 때문이었다. 그는 "GPT-3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 글이 실제로 모종의 주장을 펴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또한 기술 변화의 속도에도 놀랐다고 밝혔다. 2010년 사피엔스를 집필할 때만 해도 인공지능의 수준은 "원시적"이었지만 10년여 만에 커다란 기술적 도약이 이뤄졌다는 점에서다.
그는 "역사상 처음으로 힘의 중심이 인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면서 "적어도 몇 년 동안은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여전히 더 강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어 "인공지능을 비롯한 혁신적인 기술을 어떻게 개발하고 사용할지, 그 틀을 결정할 힘을 (인간이)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 이 힘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라리는 최근 기고한 '호모데우스 2022년 판 서문'에서도 기술 발달에 따른 윤리와 책임 의식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2016년 호모데우스를 처음 출판했을 때만 해도 인류는 역사상 가장 협력적이고, 평화롭고, 번영된 시대를 구가하고 있었다"며 "기근, 역병, 전쟁이 감소한 것은 어떤 기적이 일어나서가 아니라 인간의 현명한 결정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드러난 리더십 부재와 정치의 실패, 세계질서가 붕괴한 틈을 타 자행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인류는 위기로 치닫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만일 푸틴의 도박이 성공한다면 세계 질서가 붕괴하고 평화와 번영의 시대는 막을 내릴 것"이라며 "세계 각지의 독재자들은 다시 정복 전쟁에 나서도 된다고 생각할 것이고, 민주주의 정권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생태 위기에 대처할 능력과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의 폭발적 잠재력을 규제할 힘을 완전히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할 책임이 있으며 생태 위기를 막고 인류가 새롭게 갖게 될 폭발적인 힘을 규제할 책임도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