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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시대, 진짜 국격을 높이려면?

  • 김신 기자
  • 등록 2022-10-14 11:49:34
  • 수정 2022-10-14 15: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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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 한 번은 불러보았다

바야흐로 K의 시대다. 음악, 드라마, 영화, 웹툰 어디든 K를 붙이고 자랑스러워한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를 보면 외국인들이 우리 것을 치켜세우고, 세계 유명영화제에서 연달아 수상하니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과연 그럴까.



최근 위즈덤하우스에서 펴낸 <한 번은 불러보았다>를 읽으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정회옥 교수가 쓴 이 책은 한국인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고발하고 그 뿌리를 담은 여정을 담았다. 차별의 구체적인 일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방글라데시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K는 2020년 10월 퇴근하는 중에 모욕적인 상황을 경험했다. 그에게 50대 중반의 중년 남성 두 명이 “야 코로나!”라고 부르며 시비를 걸었던 것이다. K의 항의에도 이들은 당당했고, 그의 어두운 피부색을 보고는 “불법 체류자 아니냐?”, “한국인을 상대로 돈 뜯어먹는 놈 아니냐?”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그런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와서 가장 먼저 한 일 또한 가해자들이 아니라 K의 신원 조사였다. - 132쪽

 

극단적인 사례일 뿐 나와 상관없는 일일까? 직장 동료와 점심 메뉴를 고를 때 중화요리를 먹고 싶다면, 여러분은 혹시 “짱깨나 먹으러 가자!”라고 하지 않는가? ‘짱깨’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면 흑형, 튀기, 똥남아, 개슬람은 어떤가? 이런 ‘멸칭’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다음 대통령으로 충분한 자격이 있다. 이처럼 우리 안의 인종차별은 습관처럼 몸에 배어있다. 


인종을 차별하는 역사는 오래됐다.


흑인들은 가죽이 검으며 털이 양의 털같이 곱슬곱슬하며, 턱이 튀어나왔으며 코가 넓적한 고로 동양인보다도 미련하고 흰 인종보다는 매우 천한지라. - 38쪽


1897년 6월 24일 자 《독립신문》 사설은 흑인을 위와 같이 묘사했다. 《독립신문》의 인종주의적 편견은 끊이지 않는다. “흑인과 적인은 인류가 아닌 것은 아니로되 족히 의논할 것이 없고…….” 이는 《독립신문》 1899년 9월 11일 자에서 뽑은 글이다. 당대의 엘리트인 윤치호는 미국 사회의 흑인 차별을 정당한 일이라고까지 주장했다.

 

이는 뒤늦은 개항으로 조바심이 난 조선 엘리트들이 서구의 인종주의를 비판 없이 수용해, 소위 ‘서구식 인종 피라미드’를 만들어 다양한 인종을 줄 세운 결과다. 이들은 위에 언급했던 것처럼 《한성순보》, 《독립신문》, 《매일신문》 등의 근대적 매체인 신문을 통해 이런 편향된 사상을 대중들에게 그대로 전파했다.


문제는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부터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은 ‘망국민론’, ‘야만 인종론’을 교육받으며 식민주의를 내면화하고, 이에 대한 반발심리로 순혈주의와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가 시작됐다. “민족주의는 ‘우리’와 ‘타자’ 사이의 구분 짓기를 한국인의 의식 깊숙한 곳에 새겨놓았고, 이로써 ‘우리 결속’은 너무나 쉽게 ‘타자 배제’로 이어져 왔다.” - 13쪽

 

해방 후 민족주의는 이승만 정부를 거치며 일민주의一民主義로 왜곡, 변질하였다. 단일성에 해가 되는 것이 있으면 신속히 제거하고 버리라는 일민주의는, 순혈주의 신화에 집착하고 우리와 혈통, 문화, 종교,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인종주의와 맥이 닿는다.

 

일민주의는 체계를 갖춘 이념으로 보기에는 매우 빈약했지만, 해방 후 반공주의와 결합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이승만은 대한청년단 창단 격려사에서 “일민의 기치하에 공산주의를 쓰러뜨리자”라며 반공주의와 결합한 일민주의를 제창했고, 이는 한국적 전체주의 이념으로 강화되었다.

 

1970년대가 되면서 한국인의 인종주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국가의 개입 아래 급속하게 산업화하면서 발전주의와 가부장적 가족주의가 결합하며 ‘우리 민족’은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성역이 되었고, 그 밖에 놓인 ‘그들’은 철저히 배제의 대상이 되었다.

 

국가 발전을 위해 줄기차게 노력하자는 독려는 경제적·물질적 성공과 번영을 최상의 가치로 삼는 태도를 형성했다. 그 결과 한국식 인종주의는 피부색에 따른 차별뿐 아니라 돈이 많은지 적은지 따위를 따지는 경제적 차별을 동시에 수행하게 되었다. 한국인이 가난한 나라 출신 외국인을 부유한 나라 출신 외국인과 다르게 대하는 데는 바로 이러한 발전 지향적인 사고가 똬리를 틀고 있다.

- 82쪽

 

그동안 우리나라가 인종차별이 없는 나라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단지, 인종차별에 대한 법적 정의나 규정이 없고, 관련 범죄에 대한 통계도 수집되지 않아서일 뿐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 200만 시대에 ‘다양성’은 거부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이다. 진정한 다양성을 추구하려면 <한 번은 불러보았다>를 읽고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자랑스런 K가 되고 ‘진짜 국격’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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