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5-17 09:27
제 43 편 솜사탕과 도너츠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163

제 43 편

 솜사탕과 도너츠

  종로 거리에는 남북으로 길고 가느다란 좁은 골목길이 참 많았다.
어른 하나가 겨우 지나갈 아주 좁은 골목길이 있고 어른 서너 명이 지나갈 조금 큰 골목길, 손수레와 자전거가 지나다니는 보다 더 큰 골목길 등이 있는데 손수레와 자전거가 다니는 골목길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장사를 하는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는 자전거에다 솜사탕 기계를 올려놓고 지나가는 학생들을 상대로 솜사탕을 팔고 있는데 나이는 얼추 당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한결 같이 하늘색 점퍼를 입고 겨울에는 유엔잠바와 털모자를 쓰고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생각이 많은 아저씨였다.

  솜사탕 기계는 지금 하고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미제 군용휘발유 버너로  열을 내어 설탕을 녹이고 재봉틀 페달을 밟아 원통을 돌린다. 돌아가는 원통 안에서는 솜사탕이 뭉게구름처럼 송골송골 피어오르면 젓가락보다 조금 긴  막대기로 휘휘 감아서 주는데 그야말로 ‘꿀맛’이다. 문제는 꿀맛’의‘솜사탕을 사 먹을 돈이 없다는 것이다. 대략 3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당시 전차표가 학생이 3원 정도 했을 것이다.  남들이 사서 조금씩 뜯어먹는 모습을 바라보면 입속의 모든 침이 순식간에 고여 그냥 물처럼 넘어간다. 그러면 솜사탕 아저씨는 얼마 후 원통 안에 조금씩 묻어있는 찌꺼기를 손으로 몇 번 훑어서 준다. 내손으로 건너온 찌꺼기는 이미 어느 정도 녹아 있어 솜 같은 부드러운 맛은 사라지고 끈적거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까지 쪽쪽 빨아먹는다. 덩치가 제법 큰 녀석들은 어린 꼬마가 사서 먹을라치면 잽싸게 한 움큼 뜯어 먹기도 한다.

  그러나 가끔 공짜로 솜사탕을 얻어먹는 기회가 있다. 그 시절에는 오늘날 아이돌 스타 못지않게 국악인도 인기가 많았다. 특히 이은관선생의 ‘배뱅이굿’이 인기가 많았는데 손님도 별로 없고 조금 한가하면 솜사탕 아저씨가 자기의 배뱅이굿 소리를 들어주면 공짜로 준다고 해서 꼬마 몇 명이 쭈그리고 앉아있으면 ‘즉석 무대’가 펼쳐진다. 이윽고 주인아저씨는 자전거 페달을 손으로 돌리면서 배뱅이굿 한 대목을 목청껏 울리면 우리는 눈을 지그시 감고 주인아저씨의 소리를 감상한다.

  ‘이 소리만 끝나면 솜사탕을 공짜로 먹는다는 설렘 속에’ 알지도 못하면서 추임새를 넣어가며 감상을 하는데 아저씨가 어찌나 구성지게 소리를 하는지 꼬마 관객들은 어느덧 소리에 빠져 눈시울이 붉어지며 감상을 한다.

  소리에 빠져 한참 듣다 보면 뒤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나는데 뒤돌아보면 지나가던 아주머니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게 아닌가. 즉석 공연은 대성공이다. 어느덧 공연(?)이 끝나면 어느 틈에 뒤에 서 있던 어른들이 너도나도 솜사탕을 달라고 한다. 아마 공연 값이었으리라. 어른 손님들에게 하나씩 팔고 나면 아저씨는 우리에게도 약속한 대로 조금 작게 만들어서 하나씩 손에 쥐여 준다.

  내가 성인이 된 후 방송다큐멘터리 연출자로 한참 일하고 있을 때 이은관 선생님을 모시고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수십 년 전 일화를 말씀드렸더니 당시 75세의 명인이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내가 다 즐거웠다. 나는 지금도 배뱅이굿을 들으면 그 시절이 떠올라 주인아저씨가 궁금해진다. 요즘처럼 오디션 프로그램이 당시에 있었으면 분명 스타가 될 아저씨였는데.

  솜사탕 자전거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찹쌀 도너츠 손수레가 있다.
  도너츠의 공식 외래어 표기는 ‘도넛’인데 예전 어른들은 일본식 발음으로 ‘도나스’라고도 했다. 나는 그냥 예전 표현대로 ‘도너츠’라고 하겠다.

  어머니 친구 분 남편이 하는 도너츠 손수레인데 가끔 그 앞으로 지나가면 나를 꼭 불러서 몇 개씩 종이봉투에 넣어 집에 가서 먹으라고 손에 쥐여 준다. 단것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설탕이 잔뜩 묻어있는 도너츠는 큰 호사였다. 나는 봉지를 들고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자랑하는데 어머니는 막 화를 내시며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하신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속으로 어머니만 원망하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어머니 친구 분인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웬 영문인지 별거 중이라고 한다. 그 다음에는 아저씨가 도너츠를 주시면 집에 가져가지 않고 혼자서 다 먹고 들어가거나 친구들에게 선심을 쓰곤 했다. 몇 번 그러다가 어느 날 괜스레 아저씨에게 미안함 마음이 들어 일부로 골목길을 돌아가곤 했다.

  한번은 아버지가 종로 2가 쪽에 있는 유명 과자점에서 도너츠를 사오신 적이 있다. 자다 말고 깨어나 나를 포함 2남 3녀가 모여 앉아 도너츠를 먹고 있는데 나는 고급 과자점에서 사온 것보다 손수레 도너츠가 더 맛있다고 생각이 든다. 처음 먹어 본 음식의 강렬함이랄까. 지금도 어지간한 유명 도너츠 보다 아저씨가 만들어준 게 훨씬 맛있다고 생각이 든다.

  ‘고로케’라고 하는 음식이 있다. 우리는 그냥 빵 속에 소를 넣은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원래는 서양 튀김 요리의 하나로 푹 삶아서 으깬 감자에 잘게 다져서 볶은 고기와 채소를 넣고 소금과 후춧가루 따위로 양념하여 둥글게 빚은 다음 밀가루와 달걀, 빵가루를 입혀 기름에 노릇하게 튀겨 내어 만든다. 원 명칭은 프랑스어로 ‘크로켓’(Croquette)이라 하는데 우리는 그냥 어른들이 부르듯 고로케라고 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고로케를 먹어본 날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당시 나는 종로 5가에 있는 효제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모습은 또렷한 친구가 있다. 이 친구의 어머니가 학교 앞 건너편에 별천지 같은 선교사 집에서 파출부로 일하고 계셨다. 마당 수준이 아닌 아주 넓은 잔디밭에 서양식 집과 창고, 차고 등 당시로써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지금 종로 5가 연지동에 있는 한국기독교 연합회관이라 생각된다. 친구와 나는 학교가 파하면 거기 ‘미국’으로 입국한다. 어린 내가 봐도 전혀 다른 나라에 왔다고 생각했으니까 입국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요즘도 미군 부대에 들어가면 그런 느낌이 드는데 하물며 당시에는 오죽했으랴. 

  그 날도 친구와 나는 밀가루, 쌀, 목재, 건초, 기름 등을 보관하던 큰 창고에서 놀다가 친구 어머니가  “얘들아~고로케 먹자”  “고로케가 뭐니?” "응. 그런 게 있어. 아주 맛있어.”
  친구 집 주방으로 갔더니 친구 어머님이 하얀 접시에 타원형처럼 생긴 것을 올려놓으셨다. 친구 어머니는 우리더러 천천히 먹으라 하시고는 빨래를 개고 있으셨다. 지금 생각하면 미국 영화에 늘 나오는 가정부의 모습이었다.

  나는 문제의 고로케라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 앞에 주눅이 들었는데 친구는 익숙한 듯 먹기 시작한다. 나도 용기를 내어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로케를 한 입 밴 순간 ’아~세상에 이런 음식이 있구나!’ 라는 생각에 친구 어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보이고 친구 녀석이 부럽기 한이 없었다.
 
  공부도 잘 못하고 매일 콧물을 달고 사는 멍청해 보이는 녀석이 그렇게 위대해보일 수가 없었다. 나는 속으로 ‘아마 이 녀석이 매일 나한테 당하니까 자기 엄마를 이용해 내 코를 납작하게 하려고 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순간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코로케인지 뭔지 모르지만 당장 이걸 먹는 게 우선이었다. 정신없이 먹고 난 후 친구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는데 지금 또 만들고 있으니 집에 가져가 어른들하고 먹으란다. 거기다 선교사 집 아이들이 놀 다 버린 ‘미제장난감’을 한 주먹 담아주니 그야말로 입이 귀에 걸려 한걸음에 집을 와 ‘전리품’을 쏟아내니 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한다. 그 찌질한 친구의 작전이 유효했는지 나는 그 후에 멍청이를 보호하는 수호천사가 되고 이후 수시로 ‘미국’에 놀러 가는 특혜를 누렸다.

  대가도 혹독하게 치렀다. 평소 기름진 음식을 먹을 일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갑자기 기름에 튀긴 음식을 먹다 보니 설사를 해대는 바람에 애꿎은 똥구멍만 헐어 버린 것이다.

  지금도 고로케는 웬만한 동네 빵집에서는 판매한다. 더 커 보이고 먹음직스럽고 속도 많겠지만 별로 구미가 가지를 않으니 입맛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어쩌다 그쪽을 지나가다 보면 변해도 너무 변해 어디가 어딘지 종잡을 수 없지만, 솜사탕과 도너츠 그리고 고로케는 잊지 않고 생각이 난다.

  성인이 되어 뭐든지 사 먹고 해먹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고 외국 상표의 도넛이 많이 들어와 있지만, 미국 구호물자인 밀가루와 싸구려 ‘쇼팅’으로 튀겨낸 ‘도나스’가 더 그리워지는 건 나만 그런가? 오늘은 모처럼 이은관 선생님의 “배뱅이 굿”이나 한 대목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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