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5-16 09:36
제 42 편 전학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205

제 42 편

 전학

  1970년 늦은 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정든 종로 6가에서 성 밖 동대문구 휘경동으로 이사를 했다. 이대부속병원 한옥 사택에서 벗어나 조그만 양옥집을 새로 짓고 드디어 ‘우리 집’을 갖게 됐다. 아버지는 맨손으로 월남한 실향민이 20여 년 만에 당신 이름의 주택을 소유하게 됐다.

  문제는 나를 포함한 형제들의 통학이다. 누나는 이미 중학교 3학년 학생이어서 전학은 생각도 못 하지만 나는 6학년이고 동생들은 4, 2, 1학년 등 4명의 전학 문제였다. 전부 종로 5가에 있는 효제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당시에는 자가용은 상상도 못 하고 전철도 없고 오직 버스만이 유일한 통학 수단이다.

  49번 안성여객이라고 기억난다. 이 버스는 중랑교에서 출발하여 문화촌을 왕복하는 버스다. 종점부터 만원 버스로 출발했다. 어린아이 4명이 버스에 올라타는 게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나는 그나마 6학년이어서 고생을 참을 만했지만 1학년 막내부터 동생들을 건사하는 통학은 지옥 그 자체였다. 차를 놓치기 일쑤이고 만원 버스에서 어른들 틈에 끼인 동생들은 아침마다 울음바다였다. 책가방, 신주머니 등은 제각각이고 심지어 옷도 찢어진다. 나는 동생들을 건사하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마 6·25 때 부모 잃은 고아 형제들의 피난이 이랬을 거다. 그러다 보니 지각은 다반사고 학교에 가도 만원 버스에 시달린 우리는 이미 파김치가 되어 공부가 제대로 될 리 없다.

  하굣길도 문제였다. 수업시간이 제각각 달라 어린 동생들은 나를 기다리느라 하릴없이 운동장에서 놀고 있고 막내 남동생은 내가 공부하고 있는 교실 복도에서 기다리는데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눈물 없이는 못 보는 광경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해서는 아이들을 잡겠다 싶었는지 결단을 내리셨다. 전학을 가기로 한 것이다.

  나는 반대했다. 65년에 입학해서 이제 조금만 더 다니면 명문 효제초등학교 62회 졸업생이 되는데 전학을 가야 한다니 기가 막혔다. 정이 들 대로 든 많은 친구도 있고 나를 예뻐해 주시는 선생님도 계시는데 전학이라니 그것도 멀리, 이름도 못 들어본 ‘촌학교’로 가야 한다는 게 싫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담임 선생님에게 미리 말씀을 드리니 선생님이 놀라셨다. 나는 자랑 같지만, 꽤 촉망(?)받던 학생이었기에 선생님의 실망이 크셨다. 또한, 전교어린이회 시사부장으로 있었기에 담당 선생님에게도 말씀을 드렸다. 교대를 갓 졸업한 의욕 넘치는 처녀 선생님이셨는데 나를 유달리 예뻐해 주었다. 많이 섭섭했다.

  나는 새로운 학교로 전학 가던 날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어머니와 함께 학교를 들어가는데 교문에서부터 건물까지 오른쪽에는 넓은 깻잎 밭이 있어 농사를 짓고 있다.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농사라니…. 순간 시골 학교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이러다가 소여물을 주어야 하는 건 아닌지 쓸데없는 걱정까지 하게 됐다. 개구리 우는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였고 두엄 냄새도 간간이 바람에 실려 왔다.

  어머니와 교무실에 가서 행정 절차를 밟고 학급을 배정받았다. 6학년 4반으로 결정됐다. 담임 선생님은 풍채 좋고 인상 좋은 중년의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종로의 명문학교에서 온 나를 각별하게 여기셨다. 어머니는 가시고 나는 담임 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나를 교단에 세운 후 학생들과 인사를 시킨다. 나는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한눈에 학급의 분위기를 파악했다. 옷차림이며 행동이며 문방구 등이 어딘지 모르게 촌스러웠다. 순간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주눅이 들지 않고 내 소개를 했다. 상투적인 인사였겠지만 인상적이었는지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선생님도 만족하신 듯 자리를 배정해주셨다. 주변에 있는 아이들과 눈인사를 하고 수업을 하는데 진도가 좀 늦은 듯했다. 효제에서는 공부와는 담을 쌓았지만 그래도 중상의 성적은 유지했는데 이곳에서 처음 본 시험에서는 70여 명 중 10등 안에 드는 경험을 했다. 그 정도로 성안의 학교와 성 밖의 학습 수준이 차이가 난 것이다.

  쉬는 시간에는 나의 무대였다. 같은 서울이라도 두엄 냄새와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고 자란 아이들과 종로 아이는 현격하게 문화적 차이가 있었다. 나는 ‘뻥’을 적당히 섞어가며 ‘썰’을 푸는데 아이들은 깜빡 넘어간다. 당시 나는 시내 학교에서 전학 왔다는 이유 하나로 은근한 우월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학적부를 보시더니 나보고 축구부에 들기를 권했다. 마침 담임 선생님이 축구부 감독을 하고 계시어 어차피 공부는 하기 싫고 ‘뽈’이나 차자고 덜컥 가입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는 전학 온 지도 얼마 안 되는 녀석이 벌써 학교를 주름잡고 있었다. 효제초등학교에서도 공부는 뒷전이지만 전학 간 학교에서도 공부와는 담을 쌓았다. 사실 축구부에 가입한 것도 공부를 하지 않을 요령으로 한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운동을 잘한 것도 아니다. 그냥 적당히 후보만 안 될 정도로 했다. 초등학교 축구 실력이 얼마나 변별력이 있겠는가. 그러나 당시 서울에서 축구를 잘하는 몇몇 초등학교와 연습 경기를 했는데 번번이 참패했다. 특히 인근에 있는 경희초등학교와의 경기는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내가 재주가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최초로 만들어진 체육 중학교에 학교 대표로 추천원서를 써 주셨는데 학과는 잘 봤지만 내 축구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같은 반 아이들은 나에게 잘해줬다. 지금처럼 따돌림 같은 것 상상도 못 했다. 촌스럽기는 해도 순진했고 착했다. 더욱이 내가 살던 동네는 거의 다 같은 학교이다 보니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이웃 간에 정도 많아 꼭 자기 자식이 아니라도 잘못하면 야단도 치고 별식이라도 하면 이웃한테 돌리기도 하는 정감 있는 동네였다. 종로 6가에 살던 때와는 사뭇 다른 정서였디.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이웃 어른에게 인사도 잘하며 어려워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어느덧 53년이 흘렀다. 까까머리 남자아이, 단발머리 여자아이들과 수십 년 만에 동창회에서 만났다. 이제는 거의가 은퇴를 했지만 어엿한 노년 사회인으로 인생2막을 즐기며 열심히 살고 있다. 개중에는 먼저 세상을 등진 안타까운 친구도 있고 거의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다. 머리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 백발이 된 친구도 많고 주름진 얼굴들이지만 미소만큼은 수십 년 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가끔 만나서 예전 코흘리개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을 반추한다. 돈이 있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명예 따위는 이곳에서는 안 통한다. 그냥 개똥이, 까불이, 울보 등으로 호칭하며 술잔을 기울인다.
 
  나는 입학한 효제초등학교와 졸업한 휘경초등학교 동창회를 다 나간다. 두 동창회에서는 나를 환영하는데 모이면 재밌다. 나름 명문이라고 자부하고 다녔던 효제초등학교는 나름대로 재미가 있고 처음에는 ‘촌학교’라고 생각했던 휘경초등학교는 또 다른 낭만과 재미가 있다. 나는 복 받은 놈이다. 좋은 초
등학교 동기 동창을 양쪽 학교 동창회에서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생각난 김에 나를 중심으로 두 학교 연합동창회나 하나 만들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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