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5-11 09:46
제 39 편 옥수수빵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174

제 39 편

 옥수수 빵

  지금도 판매되는 옥수수빵이 있다. 겉은 노릇하게 잘 구어 갈색이고 속은 노란데 군데군데 하얀 우윳가루가 섞여 있는 맛있는 빵이다. 크기는 지금 시중에서 파는 조그만 카스텔라 빵만 하다.

  학교 본관 뒤에는 공민학교와 함께 조그만 독립 건물이 있다. 이곳이 옥수수 빵을 굽는 일종의 빵공장인데 평소에는 학생들이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통제를 했다. 빵을 타러 그곳에 가서 보면 커다란 무쇠솥이 있고 그 안에는 미국정부에서 무상원조 받은 옥수수가루가 반죽이 되어 가마솥에서 끓고 있다. 고소한 옥수수 냄새와 달콤함이 단것에 늘 굶주려 있던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별식이었다.

  종례시간이 가까워지면 담임 선생님이 반장이나 부반장에게 빵을 타오라고 한다. 양철로 만든 조그만 통을 가지고 가면 대략 10여 개씩 받아온 걸로 기억하는데 처음에는 주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중에는 청소 당번들에게 나누어줬다. 청소는 분단 별로 돌아가며 하는데 분단 하나의 규모는 10명이었다. 보통 6~7분단까지 있으니 일주일에 한 번씩은 옥수수빵을 먹을 수 있는 혜택이 돌아온다. 분단은 군대의 분대와 같았다. 청소 분단은 분단장의 지시 아래 청소를 끝내고 1개씩 받아 가는데 집에까지 가져가는 경우는 드물고 대충 집에 가는 길에 뜯어먹고 간다.

  옥수수빵은 냄새는 고소하나 가루를 제대로 빻지 않아 속은 거칠었다. 처음 먹을 때는 그런대로 고소하고 맛이 있는데 먹을수록 거칠고 맛이 덜했다.

  이러다 보니 잘 먹고 사는 있는 집 아이는 청소를 하지 않는 대신 자기 빵을 내놓는다. 누군가 자기의 노역을 대신하는 조건으로 빵을 더 가져가는 것이다. 이미 노동의 댓가를 깨우친 것이다. 없는 집 아이는 청소를 대신하며 빵을 더 가져가는데 그 친구는 중간에 먹지 않고 꼭 집에 가져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같은 분단 아이들이 그 사실을 알고는 자기 빵을 양보하고 형편이 어려운 친구에게 ‘몰아주기’ 를 했다. 나는 집에 같은 학교에 다니는 형제가 있어 내가 챙겨오지 않아도 동생들이 챙겨왔다. 지금 생각해도 어린 학생들이 속이 깊고 의젓했다.

  아이들은 옥수수빵을 가지고 장난도 친다. ‘묵찌빠’ 해서 몰아주기도 하고 물에 불려 죽처럼 먹기도 했다. 정 맛이 없으면 우유에다 적셔 먹기도 하지만 이거는 집에서 우유를 먹을 수 있는 전체 학교에서 몇 안 되는 최상류 가정집 아이 이야기다.

  그러던 옥수수빵도 어느 해부터 제공이 안 됐다. 한국이 살기가 좋아졌는지, 미국이 더 이상 도와주지를 않아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높은 사람들이 다 먹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당시 부정부패가 만연하던 시절인지라 아마도 중간에 누군가 “삥”을 했을 것이다.

  한창 빵이 지급 될 때는 먹자니 별로 맛이 없고 버리자니 아깝고 하던 옥수수 빵이었는데 슬슬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고 본관 뒤편의 빵공장을 가보면 자물쇠로 걸려있고 안에는 텅 비워있다.

  방과 후 청소를 끝내고 반 친구들과 옹기종기 둘러앉아 뜯어먹던 옥수수빵을 더는 먹을 수 없게 된 우리는 갑자기 배가 고픈 듯하고 허기가 졌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 입안에 침이 고인다.

  어른이 되어 친구들과 예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옥수수빵 이야기가 나온다. 두메산골 출신 친구의 이야기로는 자기는 옥수수 가루를 가지고 학교에서 죽을 끓여 먹었다고 한다. 또 다른 아이는 우유가루를 가지고 우유죽을 끓여 먹었다고도 했다. 서울 출신 친구들은 그래도 우리는 빵을 만들어 먹었는데 하며 그 친구를 놀렸다.
 
  빵을 만들어 먹던 죽을 끓여 먹던 미국의 원조물자인 옥수수를 가지고 한 것은 매한가지다. 비록 속은 거칠고 맛은 덜해도 한동안 우리들의 배고픔을 덜어준 별식이었는데 이제는 누가 줘도 사양할 지경이니 배가 많이 부르긴 부른 모양이다.

  요즈음은 무상급식이다 뭐다 해서 국가가 책임지고 아이들의 급식을 지원 한다. 격세지감이다. 점심시간에 눈치를 보며 남몰래 나가 수돗가에서 찬 냉수로 고픈 배를 달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음식물 쓰레기가 한해 몇 조라고 하니 변해도 너무 변했다.

  배불리 먹고도 남아도는 음식을 조금만 줄여도 굶주리는 동포 아이들이나 저개발 국가의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 있을 지경이다.

  이제 도로변에서는 추억의 옥수수빵이다 해서 별미로 팔지만 사실 솔직하게 말하면 맛은 별로다. 다만, 없이 살던 그 시절이 생각나서 먹어 보지만 이제는 배가 불렀는지 별다른 맛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추억의 빵으로서 거칠고 투박한 빵을 먹으며 어려운 시절을 회상하기에는 딱 좋다.

  오늘은 모처럼 그 시절 그때를 회상하며 옥수수빵이나 사 먹어 봐야겠다. 과연 맛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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