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편
몽당연필
60년대에는 모든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정부에서도 근검절약을 외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모든 물건이 차고 넘쳐 오히려 돈을 줘가며 버릴 것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이들이 늘 가깝게 써야 하는 학용품이 있다. 그중에서도 연필이 제일 중요하다. 연필 값이 얼마나 하겠나 하지만 없이 살던 시절에는 그것도 부담이었다. 요사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자주 소개되는 저개발 국가의 학교를 보면 알 것이다.
아이들의 필통을 살펴보면 거의 안 쓰면서 애지중지하는 긴 연필이 한자루쯤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는 작은 몽당연필이 몇 자루 있는데 쓰다가 길이가 짧아져 더 이상 손에 쥐기가 어려우면 못 쓰는 볼펜을 잘라 끼워 쓴다. 간혹 집에 할아버지와 같이 사는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쓰시던 붓두껍에 끼워 쓰기도 한다.
필통은 플라스틱 재질이거나 양철로 만든 게 대부분인데 간혹 여자아이들은 질긴 천으로 만든 필통을 가지고 다녔다. 저학년 아이들의 필통은 화려한 색과 다양한 캐릭터를 그려 넣었고 고학년으로 갈수록 점잖은(?) 필통으로 변한다. 가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미제필통’을 자랑하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필통 안에는 연필 몇 자루, 고무지우개, 연필깎이 칼이 전부다. 간혹 작은 자를 가지고 다니기도 하는데 드물었다. 아직 볼펜이나 만년필 등은 가지고 다닐 때가 아니었다. 형이나 누나가 쓰던 볼펜 등을 몰래 가지고 다니다 선생님에게 ‘압수’를 당하기도 한다. 선생님은 아직 글의 모양이 나지 않을 때 어른들이 쓰는 필기구를 쓰면 글씨가 늘지 않는다고 했는데 진짜인지는 몰라도 아마 연필로 쓰는 게 더 어려워서 일게다.
아이들은 몽당연필을 가지고 교실 책상에서 ‘연필 따먹기’ 놀이를 한다. 두명의 학생이 책상 하나를 같이 쓰는데 칼이나 연필로 책상 가운데에 선을 긋고 서로 넘어오지 못하게 한다. ‘연필 따먹기’ 놀이는 책상 위에다 몽당연필을 서로 올려놓고 엄지나 검지로 자기 연필을 쳐 상대방의 연필을 바닥으로 떨어트리면 자기 것이 된다. 이 놀이는 연필뿐만 아니라 지우개 등 책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내기의 대상이 된다.
‘연필치기’라는 것도 있다. 연필치기는 서로의 연필심을 맞대고 힘을 주어 부러지지 않고 남는 쪽이 상대의 연필을 따먹게 된다. 연필치기를 이기기 위해 질 좋은 미제연필을 일부러 사는 아이도 있다.
연필 깎는 칼도 진화되어 조그만 사각형의 연필깎이가 아이들에게 인기였다. 한 번은 같은 반 친구가 미제 연필깎이를 가져와 교실이 난리가 났다. 교실 전체 아이들의 연필을 몽땅 깎아주며 의기양양하던 친구의 모습이 생각난다. 이때는 평소 아끼어 한 번도 깎지 않은 연필마저 아낌없이 깎는다.
가늘고 긴 연필심을 보면 평소 하기 싫던 공부도 갑자기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회색 참외만한 원통 옆에 달려있는 손잡이를 돌리면 사각거리는 소리가 나며 돌아가던 미제 연필깎이는 지금도 볼 수 있지만 볼 때마다 그 시절이 생각난다.
공책은 질이 안 좋아 필기를 하려고 연필에 조금만 힘을 주면 잘 찢어진다. 그러다 보니 한자 한자 조심해서 필기를 해야 하는데 남들이 보면 엄청난 정성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연필심도 흑연 가루를 제대로 거르지 않고 만들다 보니 간혹 심에 조그만 알갱이가 생겨 질 나쁜 공책과 만나면 여지없이 찢어지게 마련이다. 연필심의 질이 안 좋아 아이들은 연신 침을 발라 공책에 필기를 하기도 했다. 당시 아이들은 낙타가 그려진 ‘문화연필’과 ‘동아연필’을 제일로 쳤다.
미술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학교 앞 문방구에서 도화지를 산다. 당시에는 도화지라 하지 않고 마분지라고도 했다. 마분지는 글자 그대로 ‘말의 똥’을 가지고 재활용한 질이 좋지 않은 도화지인데 색연필이 제대로 먹지를 않아 그림을 그려도 영 아니었다. 오직 가격이 ‘스케치 북’에 비해 훨씬 저렴하기에 아이들은 마분지를 좋아했다. 물감을 가지고 수채화 등을 그리면 물감의 질이 안 좋아 자기 색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수업 시간에는 누구나 ‘피카소’를 꿈꾸며 진지하게 수업을 했다.
삼각자도 제대로 삼각형 모습을 갖춘 자가 별로 없어 제대로 된 삼각자를 아이들끼리 돌려가며 사용을 했다. 분도기나 컴퍼스도 여럿이서 돌려가며 사용을 했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빨리 자기가 쓰고 친구한테 빌려 주는 아량을 가지고 있다.
당시에는 있는 집, 없는 집 할 것 없이 모두 다 근검절약이 몸에 뱄다. 조그만 물건이라도 아껴 쓰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사용하는 게 미덕이었다. 잃어 버리지만 않으면 마지막까지 알뜰하게 사용했다. 요즘이야 ‘소비가 미덕’이라고 많이 사용하라고 권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고 잘 쓰다가 버려도 별로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 세대는 지금도 누가 적당히 쓰다 버린 필기구 같은 걸 주어다 집에서 사용한다. 거의 새거나 다름없는 필기구는 사무실, 집 할 것 없이 먼지에 쌓여 차고 넘친다. 그러다 보니 방마다 여기저기 필기구가 굴러다니긴 하지만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누가 그러는데 궁상맞게 이게 뭐냐고 하지만 어릴 적부터 절약이 몸에 밴 나는 누가 뭐래도 몽당연필을 사용한다. 나이가 먹어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