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4-14 09:36
제 22 편 휘경동에서 살기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307

제 22 편

휘경동에서 살기

  70년 당시의 동대문구 휘경동은 그다지 볼게 없었다. 휘경동의 휘경원은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의 후궁이자 제23대 임금 순조의 생모인 수빈박씨의 묘다.
  처음에는 양주 배봉산(오늘날의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일대) 아래에 묘역을 정하였는데, 철종 6년(1855)에 양주 순강원 옆으로 옮겼다가 철종 14년(1863)에 달마동(오늘날의 남양주시 진접읍)으로 천장하였다. 휘경동의 유래는 이런 역사적 사실이 지명으로만 남아있는 것이다.

  배봉산, 위생병원(현 삼육병원), 근처에 경희대, 외국어대, 서울시립대 등 학교 분위기가 많이 나 ‘놀기에는’ 적당(?)하지 못 했다. 그러다 보니 나를 비롯한 악동들은 멀리 원정을 가서 놀고는 했다. 중랑교, 상봉동, 망우동을 지나면 굴곡이 심하고 좁고 가파른 망우리 고개를 지난다. 주변에는 온통 묘지만 보였다. 망우리 고개를 지나서 교문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동구릉이 나온다. 당시에는 망우리 고개만 넘어가면 완벽한 시골이었다. 주변에는 초가집이 즐비했고 논 아니면 과수밭이다. 차량도 한산하고 다니는 사람도 드물었다.

  동구릉을 개구멍으로 들어가 온종일 능에서 뛰어놀다가 관리인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지금은 사극 촬영을 하면 거대한 세트를 지어서 촬영하는데 당시에는 영화 촬영을 할 장소는 능만 한 곳이 없었다. 그러나 사극 촬영이다 보니 현대 복장을 한 우리를 호락호락하게 구경시켜주지 않는다. 멀리 숨어서 볼 따름인데 말을 타고 달리기도 하고 엑스트라 병사들이 전투를 하며 영화를 찍었다.

  한여름에는 휘경동에서 버스를 타고 중화동, 중랑구 묵동, 육사, 서울여대,태릉, 삼육대를 지나면 불암동이다. 이곳에는 불암산에서 내려오는 찬 계곡 물을 가두어 수영장을 만들었다. 입장료 30원을 내면 하루 종일 물에서 놀 수 있는데 물이 워낙 차서 미리 받아놓고 햇볕에 덥힌 다음 손님을 받을 정도였다.

  집에 갈 차비는 진작 군것질을 해서 없기에 친구들과 불암동에서 휘경동까지 걸어갔다. 제법 먼 거리지만 친구들과 함께 하는 길이기에 피곤하거나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다.

  당시에는 중화동부터가 과수밭이었다. 태릉 입구부터는 서울 여대와 육사를 제외하고는 논밭 아니면 과수원이었다. 삼육대를 지나면 완전히 농촌이었다. 초가집도 보이고 어디서나 매미 소리가 시끄러웠다. 버스 종점은 자주 다니던 포천 외가와 비슷할 정도로 촌이었다.

  이렇게 ‘개 싸돌아 다니 듯’ 놀다 보면 차비도 떨어지고 하여 휘경동 집까지 걸어간다. 당시에는 애 어른 할 것 없이 웬만하면 걸어 다녔다.

  중랑천 둑 위에는 조그만 농로가 있다. 아래는 무허가 판자촌이 촘촘하게 있고 그 옆으로는 여러 가지 채소를 심은 밭들이 길게 끝이 안 보였다. 우리는 둑 좁은 길에서 2인용 대여 자전거를 가지고 4~5명씩 타고 놀다가 운전 부주의로 길 아래 개천에 처박히기도 하는데 그래도 다친 아이 하나 없이 멀쩡하게 걸어 나오기도 했다. 지금 그 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아파트와 도로만 나있다. 커다란 미루나무도 매미소리도 온갖 들꽃도 다 사라지고 아스팔트로 포장되고 삭막한 풍경으로 변한 걸 보면 아쉽기만 하다.

  새로운 도로가 나기 시작하며 낡고 좁은 중랑교도 확장 공사를 시작했다.전철역이 생긴다고 하여 철길 주변이 정비되기 시작했다. 지금의 1호선 회기역이다. 지금은 1호선과 중앙선 등이 환승하는 중요한 역이 되어 사람으로 늘 북적거린다.

  문화 주택이라 하여 엇비슷한 집들이 고만고만 있었는데 주택 단지 개발 붐이 막 일 때여서 하루가 다르게 기존의 집들을 부수고 ‘양옥’으로 변해갔다. 위생병원 옆 논도 갈아엎어져 더는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 없고 하늘을 찌르듯 서 있던 미루나무들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마구 베어져 나갔다.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배봉산도 깎여 나가 정상에는 대공진지가 들어서고 학교가 들어서고 조그만 실개천도 복개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고즈넉하고 조용한 휘경동이 아니다.

  70년 처음으로 이사를 하며 종로에서 휘경동으로 갈 때에는 시골 촌으로 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정붙이고 친구들과 사귀면서 종로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개구리 소리와 매미 소리를 듣고 미루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피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90년에 서울을 떠 날 때 까지 초중고를 졸업하고 대학교와 군대 생활을 휘경동에서 보냈다. 군대 생활은 해병대에서 복무했는데 휴가를 나오면 내가 ‘멋있어’ 보인다고 동네 친구들이 나를 따라 많이 지원하여 내 후임으로 복무를 했다.

  신혼살림을 부모님과 함께 한 곳도 휘경동이고 바로 밑의 여동생과 부모님이 돌아가신 경험도 휘경동에서 했다. 나에게 종로는 태어나고 유년기를 보낸 곳이고 제2의 고향인 휘경동은 또 다른 경험이었다.

  지금은 그나마 그곳에서도 떠나고 충남 보령으로 내려왔지만 아직도 “서울티”를 벗지 못한 영원한 “서울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종로를 가거나 휘경동을 가면 예전의 정겨움은 사라지고 마치 낯선 외지에 온 것 같은 분위기다. 옛날의 종로와 휘경동이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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