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4-13 10:13
제 21 편 종로에서 휘경동으로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424

제 21 편

  종로에서 휘경동으로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예전 휘경동을 이야기하니 현재 사시는 분들은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종로 6가에서 나고 자란 내가 아버지의 결심으로 이대병원 사택 생활을 마감하고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70년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으로 이사를 왔다. 지금 서울삼육병원(예전에는 위생병원이라 불렀다)바로 옆인데 당시에는 병원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지금은 복개가 됐지만 중랑천으로 흘러가는 조그만 하천이 흐르고 있어 위생병원을 가려면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야 했고 병원 입구에는 파출소가 하나 있다.

  병원 옆에는 주택 몇 채만 있고 주변은 논이었다. 이사 온 첫날밤에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논에서 개구리가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생전 종로에서는 못 듣던 소리였다. 포천 외가에서나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바로 집 옆에서 들어야 했다. 생경한 일이다.

  재밌는 경험은 집 뒤 배봉산에서 약수를 길어다 먹는 일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물통을 들고 운동 삼아 가면서 부자지간의 정담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집에서 망우리 쪽으로 한 블록만 가면 중랑교다. 지금은 확장되어 넓어졌지만 당시에는 낡고 좁은 다리였다. 밑에는 중랑천이 흐르는데 여름에는 악취가 많이 났다. 70년 겨울까지는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입장료를 내고 스케이트를 즐겼는데 한번 넘어지면 옷에서 냄새가 대단했다.

  중랑천 둑 따라 끝이 보이지 않는 무허가 판잣집들이 즐비했다. 학교 친구들 중에는 거기 사는 친구도 더러 있었다. 그 길은 지금 동부 간선도로가 뚫려 시원하게 차들이 다닌다. 중랑교 바로 못 미쳐는 장미원이라고 하는 과수밭이 있었는데 아버지끼리 친구이셨다. 그 집 아들은 나하고는 동갑인데 후에 재수를 하여 나하고는 같은 과 일 년 후배가 되었다. 과수밭 역시 지금은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당시 휘경동은 신흥 주택단지라고 하기도 뭐하고 농촌도 아닌 어중간한 형태였다. 집 뒤에 휘경중학교는 이제 막 배봉산을 깎아 토목 공사를 끝내 아이들의 놀이터로 아주 좋았다. 우리는 거기서 이웃 동네 아이들과 야구공을 걸고 야구 경기를 자주 했다.

  당시 서울 동부 쪽에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 학교 수요가 많았다. 휘경, 전농, 장안, 중화중학교들이 동시에 개교를 하였다. 58년 개띠들은 이런 학교 2회 졸업생들이다.

  집 앞 개천 건너에는 보루네오 가구공장이 있어 합판 같은 걸 생산하고 있었고 옆에는 독립문 메리야스 공장이 있었다. 독립문 메리야스 공장은 우리 어머니가 소개하여 친정인 경기도 포천에서 초등학교만 졸업한 외종숙들이 많이 취업했다. 이 후 피에이티(PAT)라는 브랜드로 다양한 의류를 생산하는 공장이 되었다가 지금은 이전을 하였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휘경동에 있는 공장이 왜 독립문 메리야스라는 상호를 썼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집 앞 길을 건너면 전통시장인 휘경 시장이 있는데 어머니는 장을 주로 거기서 보셨는데 시장이 크지 않아 물건은 다양하지 못했다. 시장 끝에 대영극장이라는 삼류극장이 있었다. 주로 동시 상영을 하는데 시설이 낡고 오래되 스크린에서는 비가 하염없이 내렸다. 더 지나면 경희대와 외대가 있는데 동네 아이들이 과외를 하게 되면 주로 휘경동에서 하숙하며 이곳에 재학하는 형들에게 많이들 했다.
 
  집 바로 옆에 위생병원은 우리들의 훌륭한 놀이터였다. '제칠일안식교'라는 교단에서 운영하는 삼육대학, 위생병원은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했다. 토요일은 쉬고 일요일에는 근무를 했다. 병원 안에는 미국 영화에서나 봄직한 예쁜 빨간 양옥들이 몇 채 있는데 선교사들의 집이라고 했다. 선교사들의 자식인 어린 서양 애들을 보면 정말 인형같이 예뻤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우리에게 극도로 경계심을 갖고 근처에 오는 것을 싫어해 의아하게 생각했다. 병원은 분위기가 별장 같았고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조경이 잘 되어있어 병원에 놀러 가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괜히 경건해졌다.

  아이들은 동네 골목길에서 정구공을 가지고 ‘짬뽕놀이’를 하거나 축구를 하는데 동네가 시끄러워도 누구 하나 뭐라고 나무라지 않았다. 간혹 친구 형이 취업시험 준비를 하는데 그 형이 뭐라고 야단을 쳐야 겨우 말을 들었다.

  당시에는 시조사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큰 길이 새로 났다. 그전 까지는 경희대 입구 삼거리까지 가서 휘경 시장을 거쳐 경춘선 철길을 건너 집으로 갔는데 노선버스도 그 길로 다녔다. 어느 날 시내를 오가는 안성여객이 철길에서 열차와 충돌하는 큰 사고가 났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친 사고가 나서야 버스를 우회시켰다. 그 바람에 그쪽 상권이 죽었는데 74년 전철이 개통되며 다시 살아나 지금은 엄청나다. 사람 팔자 모르는 일이다. 지금은 회기역을 중심으로 차량은 전혀 통행하지 못해 전철 역사로만 횡단이 가능하다.

  새로 난 길에서는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위생병원에서 청량리로 가는 길이 약간 오르막길이다. 어느 여름날 분뇨 수거차가 힘겹게 올라가다가(그렇게 높진 않지만 분뇨가 가득 차서) 뒤 배출구가 그만 열려 버렸다. 난리가 난 것이다. 엄청난 양의 분뇨가 도로를 뒤덮고 심지어 도로보다 낮은 주택가를 덮쳤다. 내용물은 말할 것도 없지만 냄새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풍겼다. 긴급하게 물차와 소방차가 동원되어 씻어 냈지만 며칠 동안 근처를 지나가면 냄새로 종종걸음을 해야 했다.

  휘경동 동네 주민들은 서울에서 2대 이상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개성 등 실향민이 많았고 양평, 가평 등 경기도 인근에서 온 세대가 많았다. 충청, 전라, 경상도 등은 내 기억에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실향민끼리는 서로 동질감을 느껴 형님, 아우하며 어른들끼리도 잘 지냈고 아이들도 친하게 지내며 형제들이 많은 집에서는 위아래 서열대로 친형제처럼 지냈다. 그야말로 이웃사촌이었다. 별식을 해 먹으면 나누어 먹기도 하고 동네에 경조사가 있으면 서로 챙겼다. 종로 6가에 살던 때와는 달리 인간적인 정들이 많았다. 내가 볼 때는 다소 촌스러운 점도 없지 않았다. 가령 같은 서울이지만 중심지로 갈 때는 꼭 ‘시내’를 간다고 한다.
 
사람들의 뇌리 속에는 ‘시내’는 광화문을 중심으로 한 서울 성곽 안이고 성 밖은 그냥 서울이었다. 성인이 된 나는 고향을 물어볼 때 상대방이 그냥 서울 그러면 꼭 다시 물어본다. 아마도 종로에서 나고 자란 쓸데없는 자만심으로 물어보는 것 같다.
  서울 어디냐고? 그러면 어디 어디라고 이야기 한다. 만약 성안에 유서 깊은 동 이름이 나오면 반갑기 그지없다. 그러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동창을 찾기도 한다. 성밖 동네 이름이 나오면 하다못해 창신동, 홍은동만 나와도 내 입에서는 벌써  “에이 그러면 순 서울 사람은 아니지” 라는 말이 나온다. 쓸데없는 성안 사람 프라이드였다.

  따지고 보면 나는 순 서울 사람은 아니다. 적어도 3대 이상 100여 년은 살아야 서울 사람인데 실향민 2세인 내가 단지 종로에서 나고 자랐다고 괜한 ‘서울 놈’ 행세를 했으니 누가 뭐라고 해도 사실 할 말은 없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서울이 싫어 기회만 있으면 탈 서울을 하려고 한다. 맑은 공기와 쾌적함, 거주비 등을 고려하여 자꾸만 벗어나려고 하는데 나는 지금의 서울이 참 좋다. 얼마 전까지 여러 가지 이유로 서울 근처 위성도시에서 25여 년을 살다 다시 서울 휘경동으로 와서 몇 년 살다가 지금은 충남 보령에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틈만 나면 서울이 그리워진다.
 
  나에게는 아직도 꿈이 있다. 환경이 바뀌면 보령을 벗어나‘서울시내’로 나가고 싶다. 나고 자란 종로에서 평생 살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다. 서울특별시민중에 종로에서 사는 특별한 시민’으로 살고 싶다.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마시라. 특별한 대우를 받고자 하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고 싶은 것이다.
그리운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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