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2-08 09:59
제 1 편 성동역의 기적소리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465

웬만하면 나이를 잊고 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흔히 나이를 먹으면 "꼰대"소리를 듣기 십상인데 노력을 한다고 해도 가끔 "꼰대짓"을 한다. 나이를 먹는다는게 물리적인 개념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성숙과 같이 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최근에 본 TV프로그램에 "어른 김장하"편을 봤다. 앞서 "건달 채현국"도 일감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들이셨다. 나는 그 분들의 발끝에도 못치친다. 앞으로 남은 여생은 그 분들의 그림자라도 흉내를 내며 살아볼려고 노력해야겠다.
그 작업의 일환으로 어릴적, 60년대에 서울 종로에 살면서 느꼈던 당시 국민학교 학생의 시선으로 시절을 반추 해볼려고 한다. 나에게는 손자, 손녀가 셋인데 그 중 막내 손자가 올해(2023년)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역사적(?) 해를 맞이하여 손들에게 물려줄 과거 시간으로의 여행담을 들려줄 생각이다. 앞으로 연재될 글들은 이미 몇년 전에 회갑을 맞아 에세이로 출판하여 그해 문화부 우수도서에도 선정된 책인 "58년 개띠, 유년의 종로"라는 글을 조금 손봐 여러분들과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볼까 한다.
지금 엄혹한 시기에 동시대를 같이 힘들게 살아온 인생동지들과 함께 하고자 한다.

제 1 편
 
      성동역의 기적소리


  지금은 없어진, 서울 제기동에 있었던 성동역에서 증기 기관차의 기적 소리가 새벽 공기를 뚫고 가냘프게 울리곤 했다. ‘삑삑~ 삐 이익’ 하며 마치 아기 울음처럼 들리던 기적 소리는 소음도 별로 없던 시절이기에 제기동에서 종로 6가까지 울리곤 했다.
  65년 여름. 이른 아침이었다. 지금은 목동으로 이전한 이화여대부속동대문병원인 서울 종로 6가동에 살고 있었던 나는 변소가 집 밖에 있던 터라 대략 아침 6시면 신문 파지를 밑씻개 삼아 목조로 지은 재래식 변소에서 변을 보고 있으면 증기기관차의 기적 소리가 어찌나 처량하게 들리던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감상에 젖곤 했다. 아직 기차를 타본 기억이 없어서인지 더욱 간절하게 들렸다. 전차만 타본 나로서는 언젠가는 기차를 꼭 한번 타보리라 늘 마음먹고 있었다.

  <미카>라고 기관차에 앞과 옆에 큼직하니 적혀있는 글자가 뭔 뜻인지도 모르고 언젠가는 저 <미카>를 타야겠다고 다짐 하곤 했다. 나중에 병원 수위 아저씨에게 여쭤봤더니 당신도 잘 모르겠다고 하시다가 나중에 아마 기관차를 제작한 공장 이름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서울의 주요 교통수단은 전차와 버스가 주류고 승용차는 관공서 차량 말고는 별로 없던 시절이다. 웬만하면 도보로 이동을 했었기에 도로는 크게 붐비지 않았다.

  성동역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가 마치 자명종처럼 길게 울리면 이제 본격적으로 아침이 시작된다. 어머님께서는 내가 조금만 게으름을 피울 요량이면 “너는 아직 기차소리도 못 들었냐?” 라고 하시며 잠에 취한 나를 억지로 깨우곤 하셨다.

  지금 성동역은 1971년에 사라지고 후에 미도파백화점으로 바뀐 후 지금은 무슨 약령상가가 된 것으로 아는데 지금도 그 쪽을 지나게 되면 예전의 성동역 기적소리가 귓가에 맴돌곤 한다. 서울내기인 나에게는 기차는 오히려 경외로운 교통수단이었다. 시골 아이들은 철로 변에 살거나 역 주위에 살던 아이들은 온종일 기차를 보고 살았겠지만, 서울 하고도 종로에 살던 나에게는 비교적 신기한 탈 거리였던 셈이다.
 
  그렇게 원하던 기차여행을 이듬해 하게 되었다. 기적 소리가 귀에 익어 갈 무렵 어느 여름 날. 어머니께서 곱게 차려입으시고 나에게도 좋은 옷과 신발을 신으라 하시더니 조그만 보따리와 양산을 드시곤 나를 앞세우고 종로6가에서 버스를 타고 제기동으로 향했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어디 좋은데 가나보다 하고 신이 나서 따라 나섰다. 이윽고 내린 곳이 바로 성동역. 나는 드디어 기차를 타고 어머니와 함께 어디를 가는구나 하고 입이 귀에 걸렸다.

  어머니께서는 <독바위>라고 하는 당신의 외삼촌 댁에 나를 데리고 갈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윽고 어머니께서 매표소에서 표를 산다. 표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 나는 엄마에게 표를 보여 달라고 하여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이들이 흔히 갖고 놀던 딱지 크기 절반만 한 회색 두툼한 종이에는 발매 한 곳과 내릴 곳 그리고 요금과 등급 등이 인쇄되어 있는데 개찰구에서 역무원이 일일이 승객에게 표를 보여 달라고 한 후 펀치로 표에다가 구멍을 숭숭 뚫어주었다. 할머니들은 무슨 보물인양 몇 번을 살펴보곤 속치마 속으로 얼른 집어넣고, 할아버지는 두루마기 속저고리 주머니에 소중하게 집어넣는데 개찰구 입구에 떡 버티고 있는 경찰과 헌병이 눈을 잔뜩 부라리고 개찰구를 통과하는 승객들의 위아래를 훑어보곤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항 출입국 과정 같았다.

  드디어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선로에는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다양한 화차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화차에는 벌목한 나무, 석탄, 시멘트 등이 잔뜩 쌓여있으며 차량검수원들이 조그만 쇠망치를 들고 화차 바퀴를 “통통” 치면서 부지런히 다니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승객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보따리나 큰 가방을 들고 플랫폼에서 서성거리거나 자기들끼리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휴가 나온 군인 아저씨들은 이미 낮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큰소릴 지르곤 한다. 얼마 지났을까. 시커먼 기관차 앞에 흰 글씨로 <미카>라고 적혀있는 기관차가 서서히 진입하는데 이제껏 봐왔던 전차는 증기기관차에 비하면 마치 장난감 같았다.
  마치 큰 호랑이가 포효하듯 흰 증기를 내뿜으며 “쉭쉭” 거친 숨을 내 뱉으며 “킁킁”거리는데 나는 이미 얼이 반쯤 나간 상태다. 이때 승객들은 일제히 객차 안으로 뛰어 올라가고 나도 뒤질세라 엄마 손을 꼭 잡은 채 객실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들러보니 군데군데 이빨 빠진 것 모양 빈자리가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데 왜 그리 기를 쓰고 올라탔는지 아마도 한국인의 유전인자에는 무조건 빨리 올라타 자리를 잡는 게 습관이 아닌가 싶다.

  여객 전무가 호루라기를 냅다 몇 번 불고 알 수 없는 소음이 한동안 들리더니 드디어 기적 소리를 길게 울리고 열차는 덜컹거리며 출발을 했다. 자리에 앉고 보니 마음에 여유가 생겨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나무로 된 딱딱한 마주 보는 의자와 여기저기 때가 잔뜩 낀 통로 등 객차 내 시설이 어린 내가 봐도 영 마땅치 않았다. 더욱 모든 구조물은 오래 돼서 그런지 아귀가 맞질 않아 열차가 움직이면 모든 곳에서 합창하듯 ‘삐거덕’ 소리가 나는데 보통 소음이 아니었다. 그래도 생전 처음 기차를 탔다는 사실이 못내 흥분되어 연신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기에 바빴다.

  그렇게 열차는 긴 기적 소리를 뒤로 한 채 출발하고 한여름 낮의 햇볕은 따갑고 눈이 부시지만, 엄마와 함께하는 기차여행은 생경함과 낯선 볼거리에 마냥 흥분되는 일이었다. 조금 가다 보니 어느덧 도시 풍경은 사라지고 농촌 전원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서울 촌놈”인 나는 차창 밖 풍경 모든 것이 마냥 재미있었다.
 
  잠시 후 군청색 제복과 모자를 쓴 남자가 양손과 어깨에 무언가를 잔뜩 걸치고 통로 사이를 다니며 망에 싼 사과, 삶은 달걀, 오징어, 양갱, 오비맥주, 서울 사이다, ‘미루꾸’(캐러멜) 등을 팔며 지나가고 있다. 평소에는 소풍 갈 때만 먹는 별식이라서 감히 엄마에게는 말도 못하고 마른 침만 삼키고 있는데 엄마는 선뜻 판매원 아저씨를 불러 세우더니 조그만 사과 두 개와 삶은 달걀 두 알 거기다 서울 사이다까지 한 병 사시더니 나한테 주시는 게 아닌가. 이런 횡재가 어디 있겠나 싶어 얼른 사과 하나를 껍질도 벗기지 않고 우걱우걱 먹으며 한 손은 달걀껍질을 벗기기에 바빴다. 어머니는 웃으시며 천천히 먹으라 하시며 사이다병을 따 주시었다. 당시에는 단것이 귀해 사이다 같은 음료수는 아주 어쩌다 한번 마시는 음료였다. 지금은 별로 눈길도 안가는 먹을거리지만 그때는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기차는 기적 소리를 크게 울리며 증기기관차답게 ‘칙칙폭폭’을 연발하며 느리지만 힘차게 달리고 있다. 지금은 타고 싶어도 못타는 <미카>증기기관차.

철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추억의 증기기관차.
 
초고속열차처럼 빠른 것만 강조하는 시대에 느리게 가는 기차를 다시 타보고 싶은 생각은 나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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