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4-03 09:44
제 18 편 미스 김 아줌마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409

제 18 편

미스 김 아줌마

 종로 6가 우리 집에 늘 오는 ‘미스 김 아줌마’가 있다. 미스면 미스지 왜 아줌마라는 호칭이 붙을까 하겠지만 결혼을 하지 않아 미스인데 나이가 많아 ‘미스 김 아줌마’로 불렸던 것이다.

  ‘미스 김 아줌마’는 평양 태생이다. 월남 과정은 자세히 모르지만 1.4 후퇴 때 내려오다 부모님과 헤어진 걸로 알고 있다. 분명 고아는 아닌데 고아처럼 자란 것이다. 아버지도 평북 출신이라 ‘미스 김 아줌마’를 고향 동생처럼 생각하고 잘 대해줬다. ‘미스 김 아줌마’는 이대병원 전화 교환실에서 전화 교
환수로 일했다. 당시에는 전화 교환수가 꽤 괜찮은 직업 중의 하나였다. 약간의 평안도 억양이 남아있기는 해도 일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당시 이대병원에는 유난히 평안도 출신 사람들이 근무를 많이 해서 여기저기서 평안도 억양이 들리곤 했다. ‘미스 김 아줌마’는 자주 우리 집에 들러 밥도 먹고 쉬다가곤 했다. 아마 우리 아버지를 통해 고향의 향수를 달래려고 했는지 모른다.

  나에게도 친 조카처럼 잘 대해주고 올 때마다 내 손에 꼭 무언가를 쥐여주었다.
  ‘미스 김 아줌마’는 사실 인물도 별로이고 키가 작은 데다 악간 뚱뚱하기도 해 매력 있는 여자는 아니었다. 나는 ‘미스 김 아줌마’가 아직 시집을 못 간 이유가 인물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도 마음씨는 좋아 늘 웃으며 주면 사람들에게 잘 해주었다.

  일 년 내내 거의 검은색 아니면 짙은 감색 정장 투피스를 입고 다녔다. 나는 어머니에게 물어봤더니 돈이 없어 정장 두벌로 일 년을 지낸다고 했다.
  지금 같으면 청바지 등 대충 걸치고 다녀도 무방하겠지만 당시의 어른 여자들은 한복 아니면 정장으로 다닌 경우가 많았다.

  나는 ‘미스 김 아줌마’를 통해 6.25와 1.4 후퇴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고생을 했는지에 대해 소상하게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미스 김 아줌마’의 두 눈은 붉게 충혈 되고 흥분으로 두 손을 부르르 떨고 했다.

  70년에 휘경동으로 이사를 하고 별다른 소식이 없다가 몇 년 후 결혼을 한다는 청첩장이 왔다. 부모님과 나는 결혼식을 보러 갔는데 생애 제일 예쁘다고 하는 결혼식 당일에도 ‘미스 김 아줌마’의 미모(?)는 여전히 개선이 안되었다. 그래도 좋은 짝을 만나 시집을 가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은 나이가 좀 있는데 지금도 헷갈리는 게 노총각이라고도 하고 홀아비라고도 하는데 나는 정확히는 모르겠다. ‘미스 김 아줌마’는 친인척이 거의 없기에 우리 집식구하고 병원 동료들이 하객으로 자리를 채워 주었다. 나는 그저 잘 살기만을 빌어주었는데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어는 날 ‘미스 김 아줌마’가 울면서 우리 집을 와 어머니에게 한참 신세타령을 하고 갔다고 한다. 서울 변두리 어느 곳에서 잘 사는 줄 알았더니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애잔했다.

  ‘미스 김 아줌마’의 동료 중에 ‘미스 한’도 있다. ‘미스 김 아줌마’에 비해 나이가 조금 어려 아직 아줌마 호칭은 듣지는 않았지만 노처녀인 것은 틀림없다.
  ‘미스 한’도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는 평안도 여자였다. 이북 여자답게 씩씩하고 성격이 활달했다. 나를 많이 예뻐해 주고 해서 나는 ‘미스 한’이 오며는 반가워했다. 나하고 이야기 하기를 좋아해서 주제에 관계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는 나이에 비해 호기심도 많고 또래에 비해 어른스러웠기에 대화가 통한 모양이다. ‘미스 한’의 모든 가족이 월남해서 외롭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웃으며 쾌활했다. 집안도 비교적 좋아 공부도 잘하고 잘 된 사촌들도 많다고 했다.

  환경이 다르다 보니 ‘미스 김 아줌마’와 ‘미스 한’은 여러모로 대조가 됐다. 같은 평안도 출신이지만 한쪽은 다소 소극적이며 자기를 잘 나타내지 않고 또 다른 쪽은 가족도 많고 큰 고생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늘 자신감이 차고 넘치며 활달한 기상을 보였다.

 ‘미스 한’은 우리 집에 꽤 오랫동안 발걸음을 했다. 내가 어른이 되고 사회초년병 생활을 할 때까지 봤으니 상당히 오래 본 것이다.

  한 번은 내가 영화를 한다고 설치고 다닐 때 ‘미스 한’이 자기 사촌 오빠가 영화를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랬다. 나중에 누군가 했더니 당시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는 선배 감독이었다. 인사를 드렸더니 그런 사촌 여동생이 있다고 하는데 교류는 별로 안 하고 지내는 듯했다.

  한참 세월이 흐른 후 ‘미스 한’의 사촌 오빠인 선배 감독과 대형 프로젝트를 같이 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잘하고 볼일이다.
  내가 성인이 되고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면 사람들은 성장 배경이나 환경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환경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유년기에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은 좋든 나쁘든 나에게는 많은 영감을 준 사람들임은 분명하다.
  그나저나 미스 김 아줌마나 미스 한은 잘 살고 계실지 궁금하다. 만약 살아 계시면 팔순이 한참 넘었을 나이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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