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3-27 09:38
제 16 편 김장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436

제 16 편

김장

  갑자기 철도 아닌데 지난 가을에 해 둔 김장김치가 떨어져 가니 김장에 관한 생각이 떠올라 기억을 반추 해본다.
  60년대 중반 어느 늦가을 방안에서 부모님이 두런두런 말씀을 나누시는데 김장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 집도 김장을 할 모양이다. 며칠 후 큰 트럭이 배추와 무를 산같이 싣고 집 앞에 왔다. 어머니가 외갓집에 이야기해서 싼 가격으로 배추를 산 것이다. 동네 몇 집에서 지금 식으로 말하면 ‘공동구매’를 한 것이다. 직거래이다 보니 배추 값이 싸서 좋고 시골은 판매가 되니 좋았다.

  동네 몇 분이 리어카를 가지고 와 자기가 산 수량만큼 배추를 가져가고 우리 집은 삼백 포기를 하기로 했다. 지금이야 소량으로 적당히 하고 말지만 당시 한 겨울의 주식은 김치였다. 삼백 포기를 쌓아놓고 보니 내 눈에는 동산처럼 보였다. 어머니를 비롯해서 동네 아주머니와 용두동 작은 어머니까지 오시어 손바닥만 한 마당이 북새통을 이룬다.

  김치 만드는 과정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게 뭐 있겠냐만 그래도 집집마다 첨가하는 젓갈이나 양념 배합의 차이로 맛의 차이가 많이 났다.
  배추를 씻고 절이고 무채를 썰고 양념을 버무릴 즈음 아버지는 마당 한귀퉁이에 장독을 묻을 구덩이를 파신다. 곡괭이와 삽을 이용해 큰 구덩이를 파시는데 내가 들어가면 목만 나올 정도였다. 나도 일조를 한답시고 구덩이의 잔돌과 흙을 연신 위로 올린다. 구덩이에 장독을 집어 놓고 요리조리 살펴보시다가 장독의 크기와 구덩이의 크기를 비교한 다음 장독이 한 뼘쯤 올라 오게 한 다음 갈무리를 하신다.

  양념이 배추 속에 골고루 섞이면 드디어 장독에 김치가 들어간다. 이때쯤이면 진작부터 끓고 있던 돼지고기가 다 삶아진다. 아버지는 푹 삶아진 돼지고기를 꺼내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놓으신다. 김장에 참여한 모든 사람과 이웃 들도 돼지고기를 새우젓에 찍어 양념과 함께 노란 배춧속을 찢어 쌈을 싸 먹는다. 그 맛이 기가 막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맛있다’를 연발하며 먹기에 여념이 없다.
  뜨거운 배춧국을 한 사발씩 들이키면 김장의 고단함도 초겨울 추위도 물리친다. 사람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하는데 올겨울 김치 걱정은 없을 거라고 하며 웃음꽃이 피어난다. 그야말로 동네 잔치다. 지금 생각해도 우리 집 김치는 그전부터 인기가 좋았다. 꼭두새벽부터 시작된 김장은 저녁 무렵에야 끝이 보인다. 물론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준비를 하셨지만 동네 분들이 함께 해주어 삼백 포기의 김장을 하루에 한 것이다.

  김장 초기에는 겉절이로 김치를 대신했지만 서서히 김치가 숙성되며 고유의 풍미가 살아난다. 더욱 땅을 파고 묻은 김칫독이기에 그 맛은 지금 하고는 비교가 안 되었다. 겨울이 깊어가며 김치의 맛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겨울철 주식은 밥과 국과 김치였다. 간혹 꽁치, 고등어, 갈치 등 생선이 올라오고 드물게 돼지고기, 더욱 드물게 쇠고기가 올라오는 밥상이지만 집안 식구 모두의 젓가락은 늘 김치로 향한다.
  찬밥 한 덩어리를 뜨거운 물에 말아 먹을 때도 김치 한 보시기면 충분했다. 집안 식구 모두가 둘러앉아 밥을 먹다 보면 김치 한 그릇이 부족하다. 그러면 어머니는 식사를 하시다 말고 김칫독을 열고 새 김치를 꺼내 오신다. 그러면 더욱 맛있다.

  김장 김치뿐만 아니라 총각김치, 물김치, 나박김치, 파김치 등도 조금씩 담가 먹는데 김치는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아 단언컨대 한국인들의 유전인자 속에는 김치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 모양이다.

  봄이 다가온다. 지난 초겨울에 담근 김칫독의 김장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이미 시어졌다. 이때쯤이면 신 김치를 가지고 돼지비계를 적당히 넣고 김치찌개를 끓여먹거나 하는데 이 맛 또한 기가 막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내 입에서는 연방 침이 고인다.

  우리 집에 가끔 오는 ‘거지’가 있다. 식은 밥 한 덩어리와 묵은 김치를 주는데 여러 군데 동냥을 다녀도 우리 집 김치가 제일 맛있다고 너스레를 떤다. 거지 깡통으로 쓰이는 미제 깡통에 이집 저집 동냥으로 얻은 게 섞일 텐데 뭔 소리인가 했더니 우리 집에서 얻어 가는 김치만큼은 따로 챙겨 먹는다고 한다. ‘거지’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지금은 마당이 널따란 시골에 가도 김치냉장고 하나씩은 있다. 도무지 땅을 파고 김장독을 묻은 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인공적으로 익히는 맛이 자연적으로 익히는 맛을 이긴 걸까 아니면 편의성만 생각하는 걸까.
 드물게 마당 한구석을 파서 김장독을 묻은 집을 발견(?)하면 왠지 그 집 김치는 아주 맛이 있을 것 같다. 일부러 주인장을 불러 김치 맛 좀 보여 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이다.

  이제는 김장도 공장에서 대량 생산해 사서 먹는 시대이고 집에서 김장을 한들 불과 십여 포기 정도만 하는 시대에다 김치냉장고에서 숙성시켜 먹는 김치이다 보니 예전 어머니가 하시던 김장 김치 맛이 아닌 듯해서 많이 서운하다.
  그래도 마누라 음식 솜씨가 좋아 어머니 김장 김치맛을 얼추 재현하기에 김치를 즐기는데 손색이 없다.

  오늘 저녁은 떨어져 가는 김장 김치에다 돼지고기 뭉텅뭉텅 썰어넣어 김치찌개를 해서 먹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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