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3-16 09:26
제 13 편 고서점과 박제사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391

제 13 편

고서점과 박제사

  종로 6가 이대병원 입구 왼쪽에는 오래된 고서점이 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꽤 규모가 큰 서점이었다. 나이 많이 드신 분이 주인으로 있었고 젊은 남자 종업원이 총채를 들고 책들의 먼지를 열심히 털고 있었다. 내가 가끔 놀러 가면 주인 노인은 늘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습관처럼 말씀을 하신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 보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거나 잘하라고 하면은 잔소리로 들리며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두 번에 한 번은 1원짜리 지폐를 용돈으로 주시는데 당시에는 제법 큰 돈이었다. 그래서 공부 열심히 하라는 잔소리는 싫어도 용돈 받는 재미에 발걸음을 옮긴다.

  한 번은 흰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수염이 허연 노인이 큰 궤짝을 멜빵으로 묶어 어깨에 메고 들어섰다. 주인 노인은 외출 중이었고 나는 젊은 종업원과 총채로 칼싸움하며 놀고 있는데 시골 노인은 주인 노인을 찾는다. 젊은 종업원은 이미 아는 사이인 듯 시골 노인에게 인사를 공손히 하더니 부리나케 주인 노인을 찾으러 나갔다.

  시골 노인은 무거운 궤짝을 매고 오느라 힘이 부친 듯 숨을 쉴 때마다 그르렁거리며 가래 끓는 소리를 낸다. 나는 분위기가 어색해서 나가려고 하는데 시골 노인이 나를 불러 세운 후 ‘호구조사’를 시작한다. 나이는 몇 살 이냐, 집은 어디냐, 성씨는 뭐냐, 본관은 어디냐 하고 나를 탐문하는데 내가 일일이 대꾸를 하지 않으니 나보고 맹랑하단다. 어른이 물어보면 따박따박 답을 해야지 그러면 못쓴다신다.

  내가 뿌루퉁해서 있으니 두루마기 속에 손을 넣어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박하사탕 한 알을 꺼내 주신다. 시원한 박하향이 입안에 퍼지니 기분이 좋아 시골 노인의 질문에 속사포같이 답을 했다. 시골 노인은 만족한 듯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인 노인과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공부 열심히 해라”

  나는 왜 어른들은 아이들만 보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는지 이해도 안 되고 듣기 싫었지만, 어른이 된 나도 똑같이 아이들 보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한다. 이래서 ‘꼰대’가 되어가는 거다.

  잠시 후 주인 노인과 젊은 종업원이 책방으로 들어섰다. 두 노인은 반갑게 인사를 하더니 내실로 들어간다. 나는 거기서 본 시골 노인이 마지막이었다.
 
  며칠 후 젊은 종업원의 말에 의하면 시골 노인이 궤짝을 열어보니 많은 수의 옛날 책들이 나오는데 자기가 봐도 꽤 값어치가 나가는 책처럼 보였다고 한다.
  거래가 끝나고 가는 시골 노인의 눈이 충혈된 것을 봤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문중의 고적을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고서점에 넘긴것 아니가 하는 생각이다.

  고서점 바로 옆에는 박제하는 집이 있다. 그 집도 내가 자주 놀러 가는 집인데 우선 고서점보다는 훨씬 볼거리가 많았다. 이름도 모르는 온갖 동물들의 박제가 진열돼 있는데 새들은 금방 날아갈 듯 자세로 있고 짐승들도 금방 달려들 것처럼 생생하게 박제돼있다. 주인아저씨는 배가 불뚝 나오고 몸집이 좋은 중년의 아저씨인데 늘 손마디를 꺾으며 ‘우두둑’ 소리를 낸다.

  내실 안에서는 박제 작업을 하는데 비릿한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뒤섞여 묘한 냄새가 났다. 지금도 겁이 없지만 나는 겁이 없는 아이였다. 처참한 시신이나 공포영화, 동물의 사체 등을 봐도 무감각하기만 하다. 그런 나를 보고 박제 집 주인아저씨는 자기 후계자라고 볼 때마다 이야기를 한다. 돈도 많이 번다고 했다. 약간의 흥미를 느끼긴 했지만 평생 내실에서 동물을 상대로 바느질을 하기는 싫었다.
 
  한 번은 누군가 작은 곰 사체를 가지고 왔다. 내가 생각할 때는 밀렵으로 잡은 것 같은데 서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작업에 들어간다. 내실에서 먼저 작업을 끝낸 후 아기 곰의 가죽을 벗겨 가지고 나왔다. 피가 아직 뚝뚝 떨어지는 가죽을 널빤지 위에다 골고루 편 후 네발과 머리에 못질을 했다. 그리고는 뜨거운 햇볕에 말리는데 족히 이틀은 말린 것 같다. 바짝 말려진 작은 곰의 가죽을 가지고 다시 내실로 가져간다. 내실은 아직까지 나에게는 공개안한 밀실이었다. 나는 과정도 궁금하고 작은 곰이 어떻게 변했겠느냐는 생각에 궁금증이 더해져 매일같이 들렸다.

  며칠 후 드디어 완성됐는데 사포질을 하고 니스를 바른 나뭇등걸에 앙증맞게 올라앉아 앞발을 들고 있는 아기 곰이 탄생했다. 마치 살아 있는 곰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신기하기만 했다. 털 하나가 진짜처럼 보이고 발톱 하나도 완벽하게 복제됐다. 박제된 아기 곰은 숨만 안 쉬지 진짜와 똑같았다.

  지금 그곳에 있던 고서점과 박제하는 집, 그 옆에 사진관, 파출소, 여러 실험 기구를 판매하는 **이화학 상회 등은 흔적도 없이 다 사라졌다. 흰 두루마기를 휘날리며 들어오던 시골 노인도 새끼 곰을 감쪽같이 복제하는 집을 이제는 어디서 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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