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3-13 10:18
제 12 편 화재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361

제 12 편

화재

  68년쯤으로 기억난다. 내가 살던 동대문 이대병원 사택 조그만 한옥 옆에
는 일제 강점기에 지은 소위 ‘적산가옥’이 한 채 있었다. 그 집은 백화점 등
에 납품하는 여성용 뜨개를 만드는 ‘요꼬’ 집이었다. 1층은 살림집이고 2층
에서는 젊은 여자 미싱공들이 직조기와 재봉틀을 10여 대 같다 놓고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초겨울로 접어드는 어느 새벽에 그 집에서 불이 났다. 제품을 말리려고 천장을 가로지르는 긴 줄에 완성된 제품을 잔뜩 걸어놓고 있었는데 밑에는 연탄난로가 있었다. 그 연탄난로가 과열되어 털 실로 된 제품을 태우며 순식간에 2층 공장에 불이 붙은 것이다. 새벽이라 한참 곤하게 자고 있는데 갑자기 병원 입구에 있는 경비실에서 경비 아저씨가 다급하게 우리 가족을 깨우는 소리였다. 비몽사몽간에 일어나 보니 안방에서 뒤쪽으로 통하는 문에 시뻘건 불빛이 아른거렸다. 한지를 바른 문에서는 금방 불이 옮겨 붙을 것 갔었다.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병원 입구에 있던 파출소 경관들이 뛰어 올라왔다. 

  어머니는 형제들을 다 깨우고 나는 막냇동생을 챙겼다. 동생들은 영문도 모르고 새벽에 잠을 깨우니 울기부터 시작했다. 아버지는 마침 병원에서 당직 근무를 하시느라 집에 안 계셨다.
  어머니는 그 와중에도 안방 서랍을 여시더니 귀중품을 챙기셨다. 나는 울고 있는 막내를 경비실에 던져놓고는 어린 마음에도 책가방과 책을 챙기러 집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침착하게 챙겨 나오는데 그 사이 출동한 소방차가 마구 물을 뿌려댔다. 나는 물을 흠뻑 맞고 밖으로 나왔는데 출동한 소방관들이 불난 집보다는 아직 불이 옮겨 붙지 않은 우리 집에다 엄청난 양의 물을 뿌린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불난 집은 어차피 지금 진화를 해도 이미 다 타버렸으니 더 이상 번지지 않게 한옥 목조인 우리 집에다 집중적으로 물을 뿌린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불난 집은 개인 집이고 우리 집은 병원 재산이니까 아마 병원 재산을 보호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한참을 그러더니 이제 진화가 됐다. 주변은 온통 물바다가 됐고 불탄 잔해에서 나는 매콤한 냄새만이 난다. 간혹 타다만 나무 등에서 수증기처럼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데 한마디로 처참했다.

  그날 아침 현장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후 살펴보니 집안은 얼마나 물을 뿌려댔는지 내 발목이 다 잠길 정도였고 가구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챙긴다고 챙겼지만 교과서 등이 물에 잠겨 퉁퉁 불어있었다.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그날 학교에 가지 못 했다. 내가 초등학교 때 개근상을 못 받은 단 하나의 이유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사람이 아무도 다치지 않고 그 정도로 끝난 거였다. 불난 이웃집은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그 집 큰 아이인 윤경이는 나보다는 몇 살 아래여서 내가 잘 데리고 놀았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아이가 한동안 말을 못할 정도였다. 화재 현장인 2층 공장은 완전히 숯이 돼버렸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며 여기저기 타다만 원사며 제품과 기계가 물에 젖어 있었다. 윤경이의 외삼촌이 공장 책임자였는데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우리 집은 물먹은 집이 되어 한동안 축축했다. 가재도구가 물에 젖은 것 외에는 피해가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내가 초등 학교 입학 때부터 모아놓은 돼지 저금통이 통째로 없어진 것이다.
  몇 년을 모았기에 내가 들기에도 꽤 무거운 빨간 플라스틱 돼지 저금통에는 상당한 돈이 있었다. 동전뿐 아니라 고액지폐도 제법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이다. 집에서는 사람 안 다친 게 어디냐고 나를 위로하고 잊어버리라 했지만 나는 내내 억울했다.

  한 두어 달 후 병원 영안실 앞 쓰레기통에서 배가 쫙 갈라진 돼지 저금통을 발견했다. 한눈에 봐도 내 거였다. 아무도 모르게 돼지 귀 뒤에다 나만 아는 표시를 해두었는데 똑같았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다. 억장이 무너졌다. 지금 생각해도 상당한 금액인데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화재 사건 이후 아버지는 그때부터 이사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 같다. 당신 집도 아니고 병원에서 내준 사택에서 언제까지 살 수는 없었던 거다.
  윤경네는 화재 사고를 수습하고 얼마 후에 당시 최고의 거주지로 꼽힌 세운 상가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나는 화재 사건을 겪고 나서는 불에 대한 경각심이 새로 생겨났다. 불구경, 물 구경 등이 재미있다고 하지만 막상 내가 겪고 나니 무섭다. 요즘 산불, 주택, 공장 등 화재가 빈번하다. 불은 정말 무섭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우리 모두 불조심, 자나 깨나 불조심이다.

  그나저나 지금 진짜 아쉬운 것은 윤경이네 집은 건축적으로 굉장히 의미가 있는 집이었고 지금까지 잘 보존됐다면 근대문화유산 가치가 상당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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