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3-06 10:01
제 9 편 미제 장사 아줌마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383

제 9 편

미제 장사 아줌마

  우리 집에 단골로 오는 ‘미제 장사 장씨 아줌마’가 있다. 우리 어머니하고도 친구처럼 지내시는데 한국전쟁 때 남편이 전사하여 과수댁으로 아들 하나를 키우며 장사를 했다. 처음은 이대병원 세탁실에서 근무를 했는데 병원을 그만둔 후 보따리 장사로 나선 것이다.

  아줌마는 갈색 보자기 혹은 낡은 가방안에 향수나 로션 등 화장품이나 분유, 초콜릿, 비스킷 등 먹을거리 그리고 아스피린, 연고제 같은 간단한 의약품, 심지어는 스카프, 속옷 등 온갖 잡화가 바리바리 들어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들은 짭짜름한 리즈 크랙커, 참스캔디(다 먹은 통은 주로 재떨이로 재활용), 주스가루인 탱, 아이보리 비누, 레볼론 샴푸, 바셀린, 올드 스파이스, 맥스웰커피, 카네이션 커피메이트, 향수 등등이었다.

  이런 것들은 미군부대 피엑스(PX)에서 남대문 시장 등으로 흘러나온 것을 아줌마는 도매 값으로 사다 이윤을 붙여 파는 것이다.
  아줌마는 딱히 우리 집에 물건을 팔러 오기보다는 오며 가며 쉬었다 가려고 오시는데 가끔 점심도 드시고 가셨다. 식사를 하고 가는 날에는 내손에 비스킷이라도 쥐어주어 ‘밥값’으로 대신했다.

  이대병원에는 ‘간호원’들이 많이 근무했다. 당시에는 ‘간호사’를 ‘간호원’이라고 불렀다. 아줌마는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을 상대로 국산보다 한결 질이 좋은 미제 물건들을 팔았던 것이다.
  나는 병원 간호사 기숙사에 자주 놀러 갔다. 누나들이 나만 가면 귀엽다고 볼도 만지고 좀 나이가 든 누나들은 내 고추를 똑 따는 흉내를 내며 “네 고추 내가 먹었다."라고 하며 나를 놀렸다. 나를 막 성질을 내며 앙탈을 부리면 사물함에 넣어둔 미제 껌이나 사탕으로 나를 달래고 했다. 지금으로 보면‘성추행’을 당한 셈이다. 그럴 때는 꼭 미제 장사 아줌마가 내 편을 들며 “총각 고추를 만졌으니 뭐 좀 사서 아이를 달래야지”라고 한다.
  나는 고추를 만지게 한 값으로 맛있는 미제 사탕을 얻어먹고 아줌마는 물건 팔아 좋고 간호사 누나는 사내 녀석 고추 한번 만져봐서 좋고 그야말로 ‘일타삼피’를 한 셈이다. 나는 일찌감치 ‘몸’을 팔아 ‘이득’을 취하는 방법을 알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엄연한 ‘불법’이었다. 미군 부대 피엑스에서 ‘야매“로 나오는 물건들을 때다가 팔면 이윤이 상당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위험도 그만큼 있었다. 당시 외제라면, 특히 미제라면 똥도 좋다고 할 정도로 외국 물건에 국민 누구나 열광하던 시절이었다.

  한번은 아줌마가 울면서 우리 집에 오셨다. 손에는 늘 들고 다니던 보따리가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왜 그러냐고 물었는데 한참을 울기만 하던 아줌마가 입을 연다. 거리를 걷고 있는데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린 것이다. 파출소에 끌려간 아줌마는 경관이 마구 겁을 주는데 어쩔 수 없이 물건을 몽땅압수당했다고 서럽게 우신다. 듣고 계시던 어머니는 아줌마를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남대문 시장에 가셨다. 뭘 사러 갔는지 구경삼아 갔는지는 기억은 없다. 우선 나는 시장의 규모에 놀랐고 인파에 질렸다. 당시에는 미아 사건이 자주 일어나 총기 있다고 소문난 나도 어머니 치맛 자락을 잔뜩 움켜잡고 뒤를 따라다녔다. 어머니는 넓은 남대문 시장을 이리 저리 다니시다가 어느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부터가 ‘별천지’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남대문시장은 ‘고양이 뿔’과 ‘처녀 불알’만 없고 모든 게 다 있다고 할 정도로 없는 게 빼고 다 있었다. 특히 군대에서 흘러나온 ‘군수품’도 많았다. 하긴 당시에는 ‘월남전’도 한창 일 때라 더 했을 것이다. 어른들끼리 하는 이야기로 남대문에서 굴러다니는 군수품만 모아도 일개 사단은 무장할 수 있다고 할 정도였다.

  나는 연신 눈이 돌아갔다. ‘꼬부랑’ 글씨로 쓴 이름도 모르고 용도도 모르는 온갖 물건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손님들은 어딘지 모르게 돈도 있어 보이고 한눈에 봐도 여유가 있었다.
  모든 게 갖고 싶고 먹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도통 뭘 살려고 하지 않으신다. 내가 조른다고 사주실 어머니가 아니기에 난 조르려고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 잠시 후 어머니는 어느 가게에서 멈추시더니 주인과 뭐라고 흥정을 하신다. 주인은 가게 밑에서 뭘 한참 부스럭 거리더니 아동용 ‘청바지’를하나 꺼냈다. 한눈에 봐도 멋있었다. 당시 청년들도 입기 어려운 ‘청바지’라니 나는 눈이 돌아갔다. 주인과 몇마다 더 하신 어머니는 ‘청바지’를 사셨다.

  일단 집에 와서 입어보니 길이가 한 뼘은 컸다. 어머니는 키가 자라니 그냥 입으라 하신다. 나는 한 뼘 정도 접고 다음 날 입고 학교에 날을 듯이 갔다. 내 청바지를 본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부러워 말들을 못 했다. 나는 얼마나 좋은지 그냥 왔다 갔다 하며 나 혼자만의 패션쇼를 연출했다.

  며칠 후 청바지를 빨고 마른 옷을 개키던 어머니가 갑자기 놀라신다. 한 뼘이나 컸던 청바지가 확 줄어들고 푸른 물이 빠져 변색이 돼있었다. ‘가짜’를 사신 것이다. 어머니의 낭패감은 어린 내가 봐도 안타까울 지경이다. 그 후 다시는 남대문 시장 미제 시장 골목은 가지 않으셨다.
  성인이 되어 세상 물정과 이치를 알고 난 후에는 ”미제 물건“이 엄청난 커넥션을 이루며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나라의 경제를 손에 쥐고 흔든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구)사이공시의 암시장을 가면 총기도 배트콩과 밀거래를 했다고 한다(그것도 미국의 정보기관). 가히 볼장 다본 것이다. ‘블랙마켓’으로 미국의 영향력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예속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미국의 양면성이 씁쓸하기만 하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대한민국 제품이 세계적인 수준이기에 자부심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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