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2-23 11:02
제 6 편 구두닦이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465

제 6 편
구두닦이
  내가 살던 종로 6가 이대부속병원 외래병동 앞에 구두닦이 일섭이 형이 있다. 성씨는 김가인지 이가인지는 기억이 가물거린다. 전쟁고아 출신인데 나이가 들어 고아원에서 나왔다고 했다. 일섭이 형은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했다. 고아원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피난길에 미군기의 폭격으로 가족이 다 죽고 혼자 살아남았다고 하는데 그것도 고아원에서 들은 이야기란다. 시대의 큰 아픔이었다.
  일섭이 형은 아침이면 어김없이 병원으로 출근하는데 잠은 합숙소에서 자 고 나온다고 했다. 구두통 등은 병원 수위실에 보관하고 빈 몸으로 나온다.
  일단 출근(?)을 하면 외래에 있는 각 과를 돌며 의사선생님의 구두를 ‘찍어온다.’ 그리고는 수십 켤레의 구두를 반짝반짝 닦는데 꼭 노래를 흥얼거리며 즐겁게 일을 한다. 흙이 묻거나 지저분한 구두가 형의 손을 거치면 ‘파리가 낙상하듯’ 광채가 나며 금방 새 구두가 된다.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하여 형 옆에 쪼그리고 앉아 더러운 구두가 깨끗한 구두로 되는 과정을 열심히 지켜보곤 했다. 의사 선생님이나 직원들의 구두를 다 닦으면 병원에 오는 외래환자나 보호자들의 구두를 닦는데 이때는 외래병동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사람들의 구두를 ‘찍어온다.’ 어린 내가 봐도 조금도 요령을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점심과 저녁은 조그만 미제 군용버너를 사용해 찌그러진 냄비에다 아침에 나올 때 사서 온 ‘봉지 쌀’과 보리를 섞어 직접 밥을 지어먹었다. 반찬은 오직 시어터진 김치 하나뿐이었다. 가끔 단무지도 있긴 하지만 일 년 내내 보리밥과 신김치가 형의 유일한 식단이었다.
  어머니는 혹시 집에서 꽁치 같은 생선을 구워 먹을 때 한 토막이라도 꼭 일섭이 형에게 갖다 주라고 하신다. 아버지는 일섭이 형 이야기가 나오면 혀를 끌끌 차시며 얼마나 불쌍하고 고생이 많은 아이냐고 하시며 헌 옷가지며 김치 등을 잊지 않고 챙겨 주었다.
  형이 저녁 무렵 일을 마치고 우리 집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구두약으로 더러워진 손을 씻고 세수를 하고 간다. 이때도 겨울이면 어머니는 꼭 따뜻한 물을 덥혀 손이 터지지 말라고 하신다. 일섭이 형은 거기에 보답이라도 하듯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우리 아버지 구두를 깨끗하게 닦아 놓았다. 아버지 구두는 그래서 늘 깨끗했다.
  명절 때가 되면 어머니는 양말 한 켤레라도 꼭 챙겨주고 저녁에 초대하여 식사를 같이 하곤 했다. 그럴 때는 평소 먹던 식사량의 두 배는 먹는 것 같았다. 아버지도 이북 출신의 실향민이어서 같은 처지인 사람을 보면 아낌없이 베풀려고 하셨다.
  일섭이 형은 나를 많이 귀여워하고 손님이 없으면 나하고도 잘 놀아주었다. 특히 ‘다마치기’(구슬치기)나 ‘딱지치기’는 형만의 특별한 비결이 있어 그대로 전수받은 나는 동네에서 가장 구슬치기를 잘하는 측에 들었다. 형이 고아원 생활을 하며 배운 거란다.
  어느 추운 1월에 형이 일을 마친 후 늘 그렇듯 우리 집에 와서 씻고는 어머니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 잠시 후 어머니는 나를 불러 형하고 영화 한 편보고 오라고 하신다. 당시 한국 최초의 장편 만화영화인 ‘홍길동’이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나도 내심 보고는 싶었지만, 내색은 안 하고 있었는데 일섭이 형이 나를 데리고 영화를 보여준다니 벌써 입이 씰룩 거리며 웃음이 나오고 있다.
  형은 나를 데리고 동대문 종점에서 전차를 타고 종로 3가에서 내렸다.  영화는 종로 3가에 위치한 ‘세기극장’(오늘의 서울극장)에서 상영 중인데 사람이 참 많았다. 영화 ‘홍길동’은 객석이 온통 어린아이들이고 같이 온 어른들도 많이 보였다. 영화상영 내내 누구라 할 것 없이 같이 발을 구르며 손뼉을 치며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영화를 다 본 형과 나는 극장을 빠져나와 극장 뒷골목에 즐비한 ‘생선구이 백반’ 집으로 향했다. 꽁치구이를 시켜 금방 지은 따끈따끈한 밥을 먹는데 세상에서 그렇게 맛있는 생선구이는 처음 먹어보았다. 적당히 비리며 짭짜름하니 기가 막혔다. 나는 그날 일섭이 형이 참 커 보였다. 나이네 비해 덩치가 크긴 했지만 그 날만큼은 전쟁고아라는 생각도 잊어버리고 구두닦이라는 생각도 나지 않고 그냥 진짜 형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이후 내가 평소에 형을 놀릴 때 쓰는 ‘딱새’라는 표현은 안 했다. 형도 나를 진짜 친동생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 우애 좋은 형제지간처럼 지내다가 어느 날 형이 우리 집에 와 부모님께 밑도 끝도 없이 큰절을 올리더니 이제 병원을 떠난다고 했다. 이게 뭔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형이 ‘입대’를 한 후 월남에 간다고 했다. 그리고 말없이 뒤돌아서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부모님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죽지말고 살아 오라고 하시며 행주치마로 눈가를 훔치셨다. 일섭이 형은 비장한 듯 입술을 꼭 다물며 인사를 하는데 그게 마지막 형의 모습이었다.
  그 후 소식이 전혀 없었는데 어쩌면 전사를 했나 라는 불길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만약 살아있다면 꼭 한번 보고 싶고 형이 닦아주는 구두를 신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 많던 구두닦이도 이제는 보기가 힘들어 졌지만 예전 어렵고 힘든 시절에는 시내 곳곳, 즉 역전이나 버스 정류장 등에 구두닦이들이 서너명씩 꼭 있게 마련이고 다방 등지에서는 소위 “찍새”들이 순회하며 손님들의 구두를 걷어가고 좀 고급스러운 빌딩 계단 한구석에 꼭 구두닦이들이 있게 마련이었다. 비록 옷은 허름하게 입어도 구두만큼은 반질반질 하고 다니는게 일종의 멋이었던 모양이다. 어른들은 구두가 깨끗하면 하루가 기분이 좋다고 했다.
  집에서는 출근 하시는 아버지 구두를 어설픈 솜씨지만 깨끗하게 닦아드려 용돈 받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이제는 닦아드릴 아버지가 안계시니 몹시 서운하다.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 구두는 이제 누가 닦아드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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