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2-20 10:22
제 5 편 목욕탕과 이발소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305

제 5 편
목욕탕과 이발소
  초등학교 시절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아버지를 따라 목욕탕을 가야 했다.
입학 전에는 어머니를 따라 “여탕”을 다녀야 했지만, 어느 날부터 내가 가기가 민망스러웠다. ‘뭔가 수상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한여름에는 매주 가지 않고 한 달에 한 번꼴로 간다. 종로 6가 집을 나와 창신동 방향으로 가다 보면 왼쪽으로 낙산 올라가는 길이 있다. 그쯤에 흰색 타일로 외벽을 장식한 목욕탕이 있는데 거기가 우리 집이 단골로 다니던 곳이다.
  아버지는 목욕 수건과 비누, 그리고 당신이 사용할 면도기 등을 챙긴 후 집을 나선다. 나는 마지못해 따라나선다. 왜냐하면, 때를 밀을 때 아버지가 ‘빡빡’ 밀어 아프기 때문이다. 입구에서는 주인이 돈을 받고 표를 내준다.
  남탕과 여탕이 좌우로 분리돼있는데 문은 없고 비닐로 된 술이 달려 손님이 드나들 때마다 탈의실이 살짝살짝 보이곤 했다. 어른들은 짐짓 모른 척 헛기침을 해대며 들어가고 가끔 마주치는 동네 더벅머리 형들은 흘낏 흘낏 쳐다보기도 한다.
  요금을 치르고 탈의실에 가면 우선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대개는 나처럼 일요일에 가족과 함께 오다 보니 아기부터 할아버지까지 입은 사람, 벗은 사람 할 것 없이 북새통을 이룬다. 옷장이나 바구니 숫자를 생각하지 않고 손님을 받다 보니 옷을 보관할 바구니가 부족해서 이미 벗은 몸으로 잔뜩 옷가지를 손에 들고 우왕좌왕한다. 그래도 누구 하나 주인에게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옷을 벗고 탕에 들어가면 뿌연 수증기 때문에 잠시 앞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눈에 익으면 욕조 안에는 까만 머리만 보인다. 하도 사람이 많다 보니 포도송이처럼 보인다. 사람이 하나 나와야 들어가기에 탕 주변에 서성거리다가 자리가 비면 잽싸게 들어가야 한다. 나이 든 어른들은 머리 위에 수건을 척하니 올려놓고 알 수 없는 주문 같은 걸 중얼거리고 아저씨들은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아이들은 물장구를 치고 싶어도 옆 사람이 있기에 자연스레 얌전히 앉아있지만, 물이 뜨거워 일찍 나온다.
 넘칠 듯 말 듯 탕안의 물이 넘실거리면 반바지만 입은 종업원이 수시로 들어와 매미채 같은 뜰채로 물 위의 때를 걷어낸다. 종업원이 안 들어오면 성질 급한 손님이 출입구에 대고 소리를 질러 때 좀 걷어가라고 외치기도 한다.
  옆의 여탕과는 벽 위에 조그만 창틀만 한 구멍이 나 있어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남탕보다 늘 시끄러웠다.
  편안한 휴식이라기보다 오직 묵은 때를 벗기기 위해 목욕탕을 오는 것이다. 하기야 평소 집에서의 목욕은 언감생심 꿈에도 못 꿀 일이다. 여름철에는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그냥 씻으면 되고 한겨울에는 부엌에서 물을 덥혀와 방에 세숫대야를 갖다놓고 겨우 얼굴과 발만 씻을 정도였다. 어른 여자들은 부엌문을 꼭꼭 여닫고 중요 부위만 씻었다.
  적산가옥인 일본식 집에 사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큰 무쇠솥에 물을 끓여 들어가 앉아 몸을 불리고 때를 밀었다고 한다.
  추석이나 설날에는 목욕탕 앞에서 번호표를 받고 차례를 기다리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믿기지 않겠지만,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겨울 한 철 내내 목욕을 한 번도 못 한 아이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이”도 많이 생겨 온몸이 근질거리기도 하고 “서캐”라 하여 “이”의 알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앉아 여자 아이들은 “참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서캐”가 하얗게 떨어지곤 했다. 그래서 한겨울에는 가끔 옷을 홀랑 뒤집어 마당에 나가 털어내고 햇볕에 말리기도 했다.
  그렇게 개운한 목욕을 마치면 다음 차례는 이발소였다. 보통 이발은 아이들은 이 삼개월 에 한번 가고 했는데 자주 가던 이발소는 동대문 성벽을 끼고 올라가다 보면 허름한 판잣집에 이발소가 있다.
  이발 의자가 3개인데 그중에 하나는 나무로 만들었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아저씨와 십칠팔 세 정도 보이는 머리 감겨주는 형, 그리고 나이가 많은 면도사 아주머니 등 세 명이 일하고 있다. 허름한 이발소는 늘 손님들로 북적거리는데 아마 주로 일요일에 머리를 자르러 오기 때문일 것이다.
  내 차례가 되면 이발사 아저씨는 나를 의자에 앉히는데 의자 팔걸이에 널빤 지를 올려놓고 거기에 앉으라 한다. 키를 맞추기 위함이다. 그때 아이들은 대개가 ‘상고머리’라 하여 뒤를 바짝 깎고 앞머리를 2, 3cm 남겨두는 머리인데 그냥 ‘빡빡’ 민 아이들도 많았다. 드물게 ‘하이칼라’라 하여 ‘있는 집’ 아이들 머리는 길게 길러 3대7 정도 가르마를 타 멋지게 넘긴 것이다. 머리 모양만 가지고도 그 집의 생활 수준을 바로 알 정도다.
  빡빡 미는 아이들의 이발은 아주 간단했다. 양쪽 손잡이 사이에 용수철이 달린 기계식 ‘바리캉’으로 ‘차각차각’ 밀면 그만이다. 간혹 ‘바리캉’의 성능이 안 좋아 머리가 집히기라도 하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오기도 한다.
  머리통을 이리저리 잡고 흔들고 보다가 이발사 아저씨는 뒷머리를 면도기로 정리한다. 이때 어느 틈에 올려놨는지 내 어깨에는 신문지를 사각형으로 자른 종이가 있고 거기에 면도칼을 쓱싹 닦으면 뒷머리 정리도 끝이다. 그리고는 이발소에서 일하는 머리 감아주는 형의 손에 이끌려 군데군데 타일이 벗겨진 세면대로 간다. 추운 겨울이 아니면 그냥 찬물이다. 정신이 번쩍 나게 찬물로 머리를 감아주는데 샴푸는 커녕 빨랫비누가 아니면 다행이다. 머리를 감겨주는 형의 손이 우악스러워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이때쯤 아버지의 이발도 거의 끝나가고 면도만 남았다. 면도사 아주머니가 서랍장에서 면도칼을 꺼내 의자 앞에 달린 갈색 긴 가죽 띠에다가 면도칼을 간다. 앞뒤로 쓱쓱 예닐곱 번을 갈고 비누를 물에 풀어 하얀 거품을 만들어낸 면도 크림을 솔에다 잔뜩 묻혀 얼굴 이곳저곳에 바른다. 겨울에는 면도솔을 난로 연통에 한번 쓱 대어 찬 기운을 없앤다. 그리고는 거침없는 손놀림으로 면도를 하는데 순식간에 끝낸다. 이발을 끝낸 아버지가 참 멋있어 보인다.
  대기하는 손님들은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듯 쉼 없이 이야기하는데 박정희가 어떻고~월남전이 어떻고 하며 열변들을 토한다.
  요즈음이야 거의 다 집에 화장실 겸 목욕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샤워 정도는 매일 하다시피 한다. 지금은 목욕탕을 간다 하면 사우나를 떠올리고 전날 먹은 술이 덜 깨서, 피로를 풀려고 또는 건강으로 간다. 심지어 때를 미는 것조차 귀찮아 돈을 주고 사람을 사 때를 밀기까지 한다.
  여자들은 사우나에 가서 미용을 핑계로 우유, 오이 등으로 온갖 호사를 누리고 온다.
  점점 사라져 가는 것 중에 하나가 ‘동네목욕탕’이다.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서로 등을 밀어주며 ‘목욕탕수영’을 즐겼던 동네 목욕탕도 얼마 전 헐리고 그 자리에 ‘원룸’이 들어섰다.
  요즘 이발소는 어떤가? 오히려 예전의 동네 이발소는 ‘모범업소’라는 간판을 걸고 여성 종업원 없이 이발사 혼자서 일당백으로 일한다. 아니면 ‘체인점’이다. 나머지는 이발이 목적이 아니라 여성 종업원의 나긋나긋한 손길에 취해 머리카락 한 올 손대지 않고 오는 ‘수상한 이발소’가 돼버렸다.
  비누 냄새와 포마드 냄새가 물씬 나며 흰 가운을 깨끗하게 차려입은 동네이발사 아저씨의 가위질 소리, 바리캉의 사각거리는 소리, 그리고 조그만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노래는 나로 하여금 나이가 먹었음을 증명하는 추억이다.
  또 하나, 밀레의 ‘만종’을 비슷하게 그린 ‘이발소그림’도 향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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