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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6-05 10:13
제 55 편 영화를 보다(2)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94

제 55 편

  영화를 보다(2)

  이후에는 종로 6가에서 5가 쪽 시장 뒤 동대문 극장, 종로 5가 와 4가 사이에 있던 한일극장 등이 나의 단골 극장이었다. 소위 ‘일류극장’ 인 대한, 명보, 국제, 국도, 스카라, 단성사, 피카디리 등은 시설도 좋고 영화도 좋았 지만 나에게는 비싼 극장이고 재개봉을 하는 ‘이류극장’은 그런대로 볼 만했다. 문제는 ‘삼류극장’이었다. 입장료가 싸고 두 편을 볼 수 있기에 돈 없는 서민들이나 학생들이 주로 다녔고 실업자들이 온종일 시간을 보내려고 많이들 왔다. 그러나 갈 곳은 못 됐다.

  우선 너무 지저분해서 곳곳에 오줌 지린내가 진동하고 담배 연기가 스크린을 덮을 정도였다. 화면은 얼마나 영사기에 돌렸는지 비가 줄줄 오고 음향도 뭔 소리인지 잘 모를 정도다. 수시로 필름이 끊어지는 데 이때면 관객들의 휘파람 소리가 요란했다.

  통로 사이에서는 매점에서 일하는 학생이나 아가씨들이 물건을 강매하기도 하고 특히 가난했기에 삼류극장에서라도 연애(?)하려고 오는 데이트 족에게는 끈질기게 오징어 등을 팔았다.

  당시에는 영화관에 출입하는 학생을 적발하기 위해 극장마다 생활지도교사가 단속했고, 극장관람석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뒤쪽 높은 곳에는 경찰관용 임검석이 따로 설치돼 있었다. 학생들은 공식적으로 학교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영화관에 출입하는 건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었다. 나도 가끔 중학교나 고등학교 다니는 형들이 단체로 관람하는 건 몇 번 봤다.
 
  ‘임검석’은 말 자체가 아주 위압적이다. 일제 강점 하부터 있던 악습으로 영화나 공연에 대한 검열과 감시를 하기 위한 공간이 오랫동안 지속했었다.
가끔 정복경찰이나 사복경찰이 와서 쉬었다(?)가는 모습은 몇 번 보기는 했다. 독재 국가에서 흔히 보는 문화 검열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본영화가 상연되기 전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가 두 편이 있었다. 바로 ‘대한뉴스’와 ‘문화영화’였다. 두 편은 강제 사항이기에 대한민국 어느 극장에서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였다. 한 주간의 정부 시책을 홍보하는 ‘대한뉴스’와 국민계몽을 목적으로 하는 ‘문화영화’는 당시‘국립영화제작소’의 ‘작품’이었다. 60년대에는 아직 ‘애국가’는 상영하지 않을 때였다. 극장주 처지에서는 아까운 상영 시간을 ‘이상한’ 영화를 트는 게 속 이 상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파월장병들의 소식을 전하는 ‘월남소식’이라는 영화도 있었다. 베트남에 파병된 주월한국군 장병들의 활약상을 선전하는데 만들어 찍은 냄새가 어린 내가 봐도 티가 났다. 연출력의 부재인가? 정부의 간섭인가? 이런 영화들이 보기 싫은 사람들은 본 영화 상영을 알리는 종소리나 벨 소리를 듣고 입장하기도 했다.

  당시 정부는 영화라는 매체를 가장 적절하게 활용하여 정권을 홍보하고 국민들을 통제하며 일깨우고자 했다.

  문화영화의 주요 소재로는 국민들의 의식을 바꾸고자 하는 교육적 내용으로 만든 다큐멘터리나 단막극 형태였으며 반공방첩을 주제로 하여 대국민 반공의식을 고취하기도 했으며 간혹 미담이나 성공사례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지금 시대야 이런 유의 영화를 만들지도 않겠지만, 만약 영화를 만들어 영화관에서 강제로 상영하게 한다면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아마 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을까?

  그런데 왜 그 시절에는 저항하지 못했을까? 군사 독재 정권의 무서움이다.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 고문을 당하며 없는 죄도 만들어지는 암흑의 시대였기에 꼼짝없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던 시대의 비극이었다.

  그나저나 나한테 미취학 아동임을 연기시키며 처음 영화를 보여준 창완형은 뭐 하고 살고 있나 갑자기 궁금해진다. ‘계림극장’은 이미 헐리고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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