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6-02 09:05
제 53 편 목마와 관람차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57

제 53 편

  목마와 관람차

  돈이 조금 들어가는 놀이가 있다. 아이들에게 ‘용돈’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이지만 그래도 주머니 속에는 동전 몇 푼이라도 있게 마련이다.

  제법 넓은 공터에 늘 오는 ‘목마 할아버지’가 있다. 진한 평안도 사투리를 쓰던 할아버지인데 낡은 손수레를 개조하여 7~8개의 나무로 만든 목마를 설치하였다. 손수레 위에는 햇볕을 막기 위한 비닐을 지붕처럼 만들고 여기저기 칠이 벗겨진 낡은 목마 다리 밑 네 곳을 스프링으로 연결해 아이가 앉아 스스로 뛰면 위아래로 목마가 흔들거린다. 녹이 슬어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소음이 난다. 할아버지는 아이가 한번 타고 내라면 재봉틀 기름 같은  걸로 스프링을 적시며 ‘보수’를 한다.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했거나 갓 입학한 일이 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타고 노는데 어린 아이들은 부모가 나와 돈을 치르고 자기 아이가 타는 모습을 지켜본다. 일정한 시간 동안 타고 놀았다 생각되면 할아버지가 내려 주기도 하고 내려오라고 한다. 아이들이 타기 전에 할아버지가 꼭 나이를 물어보는데 조금 큰 아이는 학년을 속이고 타기도 한다. 이때 좀 몸집이 큰 아이가 타면 유달리 목마가 푹 꺼지며 스프링이 거친 쇳소리를 내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역정을 내며 빨리 내려오라고 한다.

  아이들 손님이 없으면 평안도 할아버지는 밀짚모자를 푹 눌러쓰고 낮잠을 자기도 하는데 한 참 자다가 깨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아이들이 없음을 알고 다시 잠이 든다. 손님이 없어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멀찍이서 구경하던 아이에게 그냥 태워 줄 테니 오라고 한다. 아마 일종의 ‘마케팅’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동생들을 데리고 놀면서 목마 주위를 어슬렁거리면 나를 슬쩍 불러 강한 평안도 악센트로 너의 아버지와 나는 한 고향 사람이니 언제든지 이야기하면 공짜로 태워 준다고 했다. 가끔 ‘고향 할아버지’ 덕을 보긴 했다.

  집에서 목마 할아버지 이야기를 했더니 아버님이 한번 나오시어 두 분이 인사를 반갑게 나눈 적이 있다. ‘38 따라지’의 설움을 두 분이 공유하신 거다. 덕분에 내 동생들은 목마를 원 없이 타고 ‘고향 할아버지’는 가금 우리 집에 오시어 식사를 하시곤 했다.
 
  세월이 조금 더 흘러서는 목마가 세련돼졌다. 평안도 할아버지는 어느 날부터 안 보이고 조금 젊은 아저씨가 ‘신형 목마’를 가지고 나타났다. 손수레도 새것인 데다 무엇보다 나무로 만든 목마가 아닌 예쁜 색깔의 플라스틱 목마였다. 스프링도 튼튼해졌는지 몸집이 좀 나간다 싶은 아이도 태워 주는데 위아래로 잘도 출렁거렸다.

  ‘관람차’도 있다. 손수레에다 원형 관람석을 만들어 빙글빙글 돌리면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가 다시 아래로 천천히 내려오는데 크기는 4세에서 7세 정도의 미취학 아이들이 탔다. 나는 이미 학교에 다니고 있어 탈 자격이 안 되고 밑에 동생들을 데리고 다니며 태우곤 했다.

  관람차 문 옆에는 미국, 일본, 영국 등 여러 나라의 국명이 적혀 있는데 아이들이 타면서 세계여행을 흠뻑 하는 것이다. 관람차 손수레 옆으로는 길게 만국기를 걸어 놓기도 했다. 주인은 손수레 손잡이 쪽에 앉을 곳을 만들어 양발을 이용해 페달을 열심히 밟는다. 아무리 어린아이들이지만 놀이기구 자체의 무게도 있으려니와 관람차가 만석이 되면 땀을 비지 같이 흘리며 목에 건 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아낸다. 보통 십 여 회 정도 돌리는 데 너무 힘이 들어 두어 바퀴를 생략하려면 같이 온 부모가 옆에서 숫자를 세고 있다고 아직 덜 했다고 뭐라 한다. 주인은 연신 입을 씰룩거리며 양발에 힘을 주어 횟수를 채운다. 돈 벌기 쉽지 않다.

  지금은 이런 목마나 관람 차를 보기가 너무 어렵다. 아주 드물게 보는데 어찌나 반가운지 주인아저씨에게 고마움을 느낄 정도다. 하기야 공터가 있나 아이들이 있나 눈뜨면 어린이집으로 유치원으로 학교로 학원으로 아이들이 뺑뺑이를 도니 도대체 건물 바깥에서 놀 일이 없어졌다. 이제는 학교 운동장에서조차 흙을 밟을 일이 거의 없으니 요즘 아이들을 보면 안 됐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관람 차를 타며 세계 각국을 보던 꿈을 인터넷으로 대치하는 세상에 자꾸 아날로그적 시절이 그리워지는 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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