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5-30 09:12
제 49 편 자치기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38

제 49 편

 자치기

  조금 넓은 공터에 아이들의 함성이 왁자하다. ‘자치기’를 하는 것이다. 긴 막대기와 짧은 막대기 두 개를 이용해서 노는 놀이인데 주로 남자 아이들이 한다. 긴 막대기는 대략 3~40cm쯤 하고 짧은 막대기는 10~15cm쯤 한다. 긴 막대기로 짧은 막대기를 들어 올려 멀리 치는데 미리 몇 자라고 부른다. 대충 어림짐작으로 맞을 것 같으면 인정해주고 아니면 긴 막대기로 한 자 한 자 잰다. 먼저 치는 아이의 작은 막대기를 상대편 아이가 받으면 공수가 바뀐다.   
  주로 겨울에 많이 하는데 추운 줄도 모르고 연신 얼은 손을 비비며 놀다 보면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며 추운 줄도 모르고 논다.
 
  나는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골프나 배드민턴 같은 경기에서 세계적 기량을 가진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분명 어릴 적 자치기의 유전 인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팽이치기’도 한겨울에 추위를 잊는 놀이다. 추운 겨울에 주로 하는 이유는 팽이를 돌릴 바닥이 매끄러워야 하기 때문이다. 장판 깐 집안에서 하다가는 뭐가 부서져도 부서지니까 철저한 실외 놀이다. 지금이야 다양한 팽이 제품이 나오지만, 그 당시는 거의 자급자족이다. 드물게 제품으로 나온 것도 있지만, 아이들 용돈으로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여 어른들이 사주지 않으면 그림의 떡이다.

  나는 시골 외가에 삼촌들이 여럿 있는데 방학 때가 되면 몇 개씩 만들어서 보내준다. 호기심 많은 내가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단단한 나무를 팽이 모양으로 깎아낸 후 가운데에다 탄두를 박아 넣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마도 카빈총이나 엠원(M1) 소총의 탄두였다는 생각이 든다.

  동네 형들은 큰 팽이를 가지고 자기네끼리 팽이치기를 하며 서로의 팽이를 쪼개기도 한다. 우리 같은 아이들은 그게 재밌기도 하지만 팽이가 아깝다는 생각도 한다.

  ‘쥐불놀이’는 추석 명절이나 정월 대보름에 주로 하는데 나는 종로 6가에 살다 보니 직접 하지는 못하고 구경만 하고 다녔다. 낙산 쪽에 사는 친구들은 명절이면 으레 산 위에서 깡통을 돌린다.

  쥐불놀이하기 위해서는 깡통· 철사· 잣나무 가지 등 태울 것을 준비해야 한다. 당시에는 깡통과 철사가 모두 귀했기 때문에 재료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많이 쓰던 깡통으로는 ‘미제깡통’이 있었다. 철사는 군용 통신선인 ‘삐삐선’이라는 것을 사용했다. 겉 비닐 껍질을 벗겨 내면 내부의 철사가 대 여섯 가닥 정도 꼬여있는 강선의 형태로 굵기가 볼펜 심 정도였다. ‘삐삐선’은 굵고 튼튼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깡통을 돌려도 불에 타거나 쉬 떨어지지 않았다.
 
  재료가 준비되면 깡통에 구멍을 낸다. 먼저 깡통의 밑면과 옆면을 못질해 구멍을 냈으며 불이 잘 일어나게 하려고 많은 수의 구멍을 냈다. 다음에는 깡통 위쪽에 철사를 연결하기 위해 깡통 위쪽에 2개의 구멍을 더 뚫어줬다. 이 구멍에 길이 약 2m 정도의 철사를 반으로 접어 양 끝을 깡통에 연결하였다. 이걸 아이들이 만들기는 어려워 동네 큰 형들이 만드는데 나도 빨리 커서 저걸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그러나 서울 한복판에서 불은 깡통을 돌리기가 영 마땅치 않다. 그럼에도 어른들의 눈을 피해 낙산 정상에서 깡통을 돌리거나 보는 재미가 좋았다.

  내가 성인이 되어 소위 ‘영화판’에서 연출부로 일할 때이다. 숲 속에서의 몽환적 분위기의 장면을 찍는데 갑자기 감독이 ‘쪼다통’을 가지고 오란다. 나는 ‘쪼다통’이 뭔지 모르고 소품 담당에게 물어보니 바로 예전 쥐불놀이를 하던 깡통과 똑같지 않은가. 왜 ‘쪼다통’이냐고 물어보니 환상적 분위기를 내기 위한 ‘스모그 효과’(연막효과)를 내야 하는데 세상 천하에 누가 흔들고 돌려도 원하는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해서 ‘쪼다통’이라고 불렸단다.

  이제는 소위 ‘쪼다통’도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하거나 장비를 가지고 연출하는데 어찌 예전의 어설픈 분위기만도 못한 듯 하다. 자치기, 팽이치기, 쥐불놀이 등도 친구들이 있어야 하고 일정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아이들을 낳기를 하나, 공터라면 아파트 짓기에 골몰한 돈에 눈이 뒤집힌 어른들이 있기에 머지않아 없어질 놀이가 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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