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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5-12 09:20
제 40 편 존슨대통령과 악수하다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140

제 40 편
                       
  존슨 대통령과 악수하다

  60년대 박정희 군사독재 시대에는 시민, 학생 동원이 참 많았다. 하루가 멀다고 무슨 궐기대회니 촉진대회니 결의대회니 하며 국민들을 ‘달달’ 볶았다.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걸핏하면 동원되었다. 수업시간을 빼먹어 좋긴 했지만 다소 피곤한 일이었다.
 
  1966년 10월에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방한하였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서울 시민 총동원령에 따라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용모를 단정히 한 다음 지정된 장소인 광화문 로터리에서 담임 선생님의 인솔 하에 대기하고 있었다. 손과 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반장의 구령에 맞추어 팔이 아프도록 흔들어야 했다. 우리 같은 학생만 동원된 게 아니었다. 지역별, 직장별, 학교별로 서울 시민이 전부 동원된 것 같다. 각급학교 밴드부도 동원되어 연신 미국의 행진곡을 신나게 연주하고 있다.

  전봇대는 온통 태극기와 성조기가 걸려있고 전차와 버스도 꽃으로 장식되어 경적을 울리며 다니고 있었다. 전 서울 시내가 태극기와 성조기로 장식되어 있고 모든 사람의 손에는 양국기가 들려져 있다. 모든 사람이 오직 미국의 존슨 대통령을 위한 것 같다.

  지금은 철거됐지만 세종로 사거리에는 큰 아치가 당시 중앙청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나 있었다. 철로 만든 반원형 아치에는 온통 박정희와 존슨의 초상화로 포장돼있고 아치 아래에는 많은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도에는 동원되어 나온 학생과 시민으로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데 벌써 팔이 아프도록 양국 기를 흔들어 대고 소리를 질러댔다. 기억은 정확히 나지 않지만 ‘존슨 대통령 만세’, ‘박정희 대통령 만세’, ‘미합중국 만세’ 등을 목이 터지라고 외친 것 같다. 시민 중에는 반장인지 통장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구호를 선창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따라 하는 식이었는데 열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마치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구호를 외치는데 얼마나 소리가 큰지 옆에 사람과 대화를 못 할 정도였다.

  10월 하순의 쌀쌀함은 다 어디로 가고 열기만 남아있다. 경찰과 헌병들은 연신 호루라기를 불고 있는데 아직 대통령은 올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존슨’이 오고 있다. 멀리서 경찰 선도차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더니 갑자기 연도 앞쪽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울린다. 하늘에서는 종이로 만든 꽃가루가 함박눈처럼 내리고 사람들은 손에 양국기를 미친 듯이 흔들어댄다. 거기다 온통 만세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는데 정신을 못 차릴 정도다. 거기다 브라스 밴드의 연주까지 사방은 온통 환영 열기로 뜨겁다.

  그러다 갑자기 사람들이 경호 통제선 앞으로 확 떠밀려간다. 그 바람에 통제선이 무너지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순간 눈앞에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존슨이 차에서 내려 성큼성큼 시민들 앞으로 오는 게 아닌가. 사람들은 자기가 동원됐다는 사실을 잊은 채 발을 구르며 존슨과 더 가까워 지려고 난리가 났다. 경호원들도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순간 누군가 내 뒤에서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마침 존슨은 환영 인파와 악수를 하려고 손을 길게 내밀고 있었다. 나는 얼떨결에 존슨과 손을 마주 잡았다. 엄청나게 큰 손이 조막만 한 내 손을 잡는데 ‘찰나’의 순간이었다. 이때 사진 기자들의 셔터 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는 ‘존슨 대통령 만세’ 소리가 터져 나오고 존슨은 연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과 악수를 해댔다. 아마 존슨도 일생일대의 이런 환영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경호원의 손에 이끌려 다시 차 안으로 사라지더니 다시 나와 시민들과 악수를 하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후일 성인이 되어 당시의 영상이나 사진을 아무리 살펴봐도 나와 악수한 것은 편집됐는지 보이질 않았다.

  대통령 일행이 완전히 사라진 후 시민들과 학생들은 우르르 차도로 나와 언제 그랬냐는 듯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우리 같은 학생들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집으로 가고 있는데 정작 나는 쉽게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존슨과 악수한 이야기는 지금도 나에게는 과거를 이야기할 때 빼먹지 않는 단골 레퍼토리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니 부모님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아마 며칠은 손도 씻지 않은 기억이 난다.
 
  다음 해인 1967년에는 서독의 뤼브케 대통령이 방한하였다. 늘 그렇듯이 학생들은 동원되어 지정된 장소에서 열심히 태극기와 서독기를 흔들어 냈다.
  아마 학교가 종로 5가에 있다 보니 동원하기가 좋아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수시로 동원되어 박수와 구호를 외쳤다. 이런 동원 문화는 5공까지 계속되어 중 고교를 다닐 때도 일상적으로 하던 주요 행사였다. 만약 지금도 이런 식으로 시민들과 학생들을 동원한다면 아마 난리가 날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외국의 정상이 와도 언제 왔다 갔는지도 잘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어느 정도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일까? 아니면 국력이 강해진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다들 먹고 살기 바빠서 관심이 없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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