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4-28 09:50
제 32 편 리본문화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273

제 32 편
                                     
 리본 문화

  6,70년대 그 시절에는 학생이나 공무원들은 왼쪽 가슴에 ‘리본’을 자주 달고 다녔다. 가로 2.5cm, 길이는 8cm 정도 되는데 초기에는 하얀 헝겊을 규격에 맞게 자른 후 여러 가지 문안을 직접 적어 넣었다.

  기념일 같은 특정한 날이거나 무엇무엇 주간 등 한주 단위, 혹은 무슨 달하여 한 달 내내 부착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일 년 내내 왼쪽 가슴에는 리본이 떨어지는 날이 거의 없을 지경이다.

  몇 가지 기억나는 대로 열거해보면
  불조심, 수목주간, 반공방첩, 쥐를 잡자, 산불조심, 저축주간, 원호의 달, 교육주간, 청소주간, 멸공, 교통질서, 국군의 날 등등 이었다.

  하도 많은 리본을 달다 보니 눈치 빠른 업자가 아예 제품을 만들었다. 비닐로 씌우개를 만든 후 안의 내용을 인쇄하여 판매하는 것이다.
  제품은 진화하게 마련이다. 더 약은 업자는 아예 연중 사용할 수 있는 온갖 내용의 문안으로 인쇄한 후 병풍처럼 접어 비닐 커버 안에 집어넣는다. 보통 12개 정도 되는 문안이기에 결국 일 년 내내 사용할 수가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만약 리본을 달지 못하거나 가져오지 못하면 학교 정문에서 혹은 조회 때 담임 선생님에게 크게 혼이 나거나 반장 혹은 주번에게 달달 볶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급하면 흰 종이에다 급조하여 풀로 교복에 붙이기도 하는 어이없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당시의 시대 상황으로 봐서 전 국민에게 뭔가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고 전파를 해야겠는데 별다른 수단이 없다 보니 학생들을 통해 정부의 다양한 정책을 알리고자 했던 방법이 아닌가 싶다. 등하교를 하다 보면 전 학생이 가슴에 똑같은 규격의 리본을 차고 다닌다. 자연스레 누구나 오늘은, 이번 주는, 이번 달은 무엇인지 각인되는 것이다. 심지어 소풍을 갈 때도, 리본을 착용해야 하는 무언가가 있으면 반드시 달고 가야 했다.

 전제주의, 군사독재 시절에는 ‘구호’와 ‘슬로건’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온 도시 곳곳에 현수막이 걸리고 공공기관 외벽에는 페인트 혹은 간판으로 다양한 구호들이 적혀있다. 정치적인 내용도 많았지만 국민들을 일깨우는 내용이 많았다. 주로 국가 정책의 홍보인데 산아제한, 위생, 저축, 근검절약, 생산성 향상, 수출증진, 반공방첩, 등의 내용을 간결하거나 직접적인 내용으로 전파하였다. 그 첫 번째 전파 수단이 학생들의 ‘리본’이었다. 어린 학생들부터 교육되어야 가정에 전파가 되고 곧 이는 곧 사회적으로 전파가 된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지금 북한 풍경을 보면 살벌한 구호로 덮인 평양 등 도시의 모습을 연상하면 된다.

  철마다 각급 기관에서는 다양한 표어를 공개 모집한다. 특정 계기에 맞추어 담당 기관이 공모하는데 상금이나 부상은 보잘 것 없지만 응모 열기는 대단했다. 그리고 채택이 되면 여러 매체에서 다루어지며 개인과 단체의 영예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일 년 내내 공모와 발표가 되고 새로운 표어들이 생산 되는 것이다.

  지금도 선명하게 생각나는 슬로건이 있다. 당시에는 영화관을 가면 본 영화 상영 전에 ‘대한뉴스’와 ‘문화영화’라는 선전 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해야 하는 제도가 있었다. 둘 다 당시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제작하는데 대한뉴스는 말 그대로 대통령과 정부 정책의 홍보 뉴스이고 문화영화는 더 심층적인 ‘다큐멘터리’였다.

  자주 오는 관객들은 이미 본 영화이기에 대한뉴스와 문화영화가 끝나고 예고편을 할 때쯤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나 같은 아이들이야 일 년에 한두 번 부모님 손을 잡고 가거나 동네 형과 함께 가는 게 유일하기에 처음부터대한뉴스와 문화영화를 관람한다.

  앞서서 이야기한 선명한 산아제한 슬로건은 대한뉴스 마지막 장면인데 만화영화 즉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흥부전을 패러디해서 놀부는 애들 없이 잘 먹고 잘사는데 흥부는 10여 명의 아이가 거지꼴을 하며 사는 장면이다. 당시의 산아제한 정책은 국가의 명운을 걸고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중대한 사업이었다.
  해설자의 강한 목소리와 힘찬 자막이 화면 바깥으로 튀어나오는데 자막 내용과 해설은  ‘무턱대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
 
  아주 강했다. 그 장면이 나오면 관객들은 심각하게 머리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한다. 당시 나도 5남매 중 둘째이자 장남인데 주변 친구들을 보면 그 정도 아이들은 기본이었다. 많은 경우 칠팔 명씩 되기도 해서 정부 처지에서는 산아제한이 절실했던 모양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줄어드는 인구와 저출산, 고령화 문제 때문에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불과 사오십 년 전에는 어떡하든지 인구를 줄이고 출산을 억제하는 게 정책의 우선이었다면 현재는 정 반대가 되어있으니 역사는 참 아이러니하다.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붓고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걸 보면 자식을 낳는다는게 정책으로만 해결 되는게 아니구나 할 때가 많다. 

그나저나 다시금 생각해도 명 카피.
 “무턱대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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