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4-26 09:40
제 30 편 첫사랑 김ㅇ강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370

제 30 편

 첫 사랑 김ㅇ강

  나에게도 첫사랑이 있었다. 첫사랑이라고 무슨 거창 한 것도 아니고 가슴 뛰는 그런 사랑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김ㅇ강 이라는 아이는 선연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초등학교 2~3학년으로 기억나는데 교실 한복판에 조신하게 앉아있는 까무잡잡한 여자아이가 유독 눈에 띄었다. 곱슬머리를 길게 땋아 양 갈래로 묶고 아래턱은 약간 돌출 형인데 전체적으로 마른 몸집에 병약해 보였다.

  담임 선생님은 ㅇ강이는 몸이 안 좋다고 친구들이 잘 해줘야 한다고 몇 번을 말씀하셨다. 한참 후에 알았지만 심장 쪽에 이상이 있다고 했다. 가끔 ㅇ강이 어머니가 담임 선생님을 만나 뭔가 말씀을 하시는데 그때 ㅇ강이 어머니의 표정이 많이 안 좋아 보였다.

  반 친구들은 그런 ㅇ강이를 ‘요강’이라고 부르며 놀려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나서 ‘기사도’정신을 발휘해서 놀리지 말라고 했다. 체육 시간이면 늘 운동장 한쪽에서 다른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ㅇ강이의 얼굴은 그늘져 보였다. 나는 그럼 모습이 더욱 안타까워 같이 이야기라도 하려면 별로 반응이 없이 먼 곳만 바라보고 했다.
 
  나는 나대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내가 마음속에 ‘연정’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고 도대체 내 마음을 몰라주니 답답하기만 했다.

  ㅇ강이는 반에서 공부도 곧잘 했다. 선생님의 질문에 답변도 잘하고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는 늘 반짝 거렸다. 피부가 검어서 그런지 유독 눈동자가 더 예뻤다. 쉬는 시간에도 다른 아이들은 난리 법석을 피우는데 유독 혼자 앉아서 연필을 깎거나 책을 뒤적거렸다. 내 기억에는 1학년 시절에만 남녀 짝을 이루었고 이후 2~3학년까지는 따로 앉았고 4학년부터는 아예 반을 달리했기에 ‘치마’입은 아이들과의 합반은 3학년이 끝이다. 나는 ㅇ강이와 분단이 달라 멀찍이서 늘 지켜보는데 마음이 아팠다. 짝도 못하고 그나마 학년이 올라가면 언제 볼 수도 모르는 상황이다. 쪽지를 보내 고백을 해야 하나 직접 보고 말을 해야 하나 혼자 끙끙거리고 있었다.

  ㅇ강이는 가끔 종례가 끝나면 복도에서 기다리던 ‘식모언니’가 데리러 오곤 했다. 아마 몸이 약하니까 집에까지 ‘에스코트’를 할 요량으로 오는데 수더분하게 생긴 ‘식모 언니’ 는 비쩍 마른 ㅇ강이를 등에 업고 책가방을 손에 들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고 집에 간다. ‘식모언니’ 등에 업혀가는 ㅇ강이를 바라보는 내 가슴은 더욱 아팠다. 속마음은 ‘내가 업고 갔으면...’하는 마음이었다. ‘사랑은 제 눈에 안경 이라던가’ 다른 남자아이들은 ㅇ강이에게 관심이 없었다. 나는 더욱 그에게 마음이 끌리며 내 마음을 전할 궁리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내가 용기를 내어 단둘이 있던 교실에서 ‘고백’을 했다. ‘나는 네가 좋다고’...돌아온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갑자기 얼굴색이 변하더니 아무 말 없이 울먹거린다. 이런 낭패가 없다. 나는 빨리 이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지만 이미 뱉은 말이고 버스는 떠났다. 모면하는 길은 빨리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

  다음 날 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한 말씀 하신다. 앞으로 ㅇ강이처럼 몸이 안 좋은 친구를 귀찮게 하면 혼을 낸다는 경고였다. 마치 나에게 하는 경고처럼 들렸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에게 ㅇ강이의 싸늘한 시선이 느껴진다. 나는 억울했다. 특별히 귀찮게 하지도 않고 오히려 몸이 약한 아이를 도와주려고 했을 따름인데 몹쓸 놈으로 오해를 받고 있는 내가 한심했다.
 
  한동안 나는 그 친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선생님에게 일러바쳐 나를 나쁜 놈으로 몰다니... 억울한 심정에 내가 단단히 삐친 것이다.

  몇 달이 지났다. ㅇ강이가 웬일로 나에게 오더니 연필 깎는 칼을 빌려달라고 했다. 나를 매몰차게 거절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뭘 어쩌자고 이러는 걸까. 순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화해의 제스처를 받아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경이 복잡했다. 그러나 나는 오기가 발동했다. 나 역시 찬바람이 나게 돌아앉았다. ㅇ강이는 알았다고 하더니 자기 자리로 갔다.

  후회를 잠깐 했지만 속으로는 통쾌했다. 그리곤 ㅇ강이와의 관계는 끝이었다. 아무리 봐도 무덤덤하고 감정이 생겨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2~3학년이면 기껏 우리 나이로 10살 내외다. 역시 남녀 관계는 나이를 불문하고 모를 일이다.
  요즘은 어린이집에서부터 ‘연애’를 한다고 하는데 내가 너무 조숙했는지 아니면 늦게 시작했나? 동창 모임에 나가서 물어보는데 많은 친구들이 ㅇ강이를 기억을 해 깜짝 놀랐다. 혹시 이 녀석들도 연정을 품고 있었나 모를 일이다. 여자 동창들도 기억을 많이 하는데 언제 한번 보고 싶기는 하다. 그러나 당시의 몸 상태로 봐서는 살아 있으려나 모르겠다.

  이렇듯 나의 첫사랑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나는 여자에게 한 번 등 돌리면 그만인 나쁜 B형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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