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4-25 10:17
제 29 편 축구와 나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248

제 29 편
                                                       
  축구와 나

  포르투갈의 축구 영웅 ‘에우제비오’가 2014년에 별세했다. 나는 전설의 축구영웅 ‘에우제비오’의 경기를 서울 동대문 운동장에서 직접 봤다. 그것도 경기장 안에서 볼보이로 말이다. 1970년 포르투갈의 ‘벤피카’ 팀이 친선 경기를 하러 방한을 했다. 우리 때는 영어식으로 이름을 불러 ‘유세비오’라고 불렀다. ‘검은표범’ 또는 ‘흑표범’이라는 별명을 지니기도 했다.

  내가 축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효제초등학교에 축구부가 생긴 1970년 6학년 때였다. 신 학년이 되고 얼마 안 돼서 교실 스피커를 통해 전달 사항이 방송됐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 구기 4종목의 선수를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앞뒤 가릴 겨를 없이 종례 후 운동장으로 향했다. 사실 공부보다는 놀 궁리에 온통 신경이 가 있었는데 이게 웬일이람 합법적으로 놀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동네에서 ‘뽈’좀 찬다는 아이들이 4학년부터 모였는데 아마 4~5십 명은 족히 모였다.

  간단한 체력테스트와 체격, 면접 등을 본 후 바로 그 자리에서 축구부원이 확정됐다. 나는 사실 축구 실력이라고 해봐야 별거 없었지만 체격이 조금 좋았고 6학년이라는 프리미엄으로  겨우 선발됐다. 다른 친구들도 각자 선호하는 종목으로 운동부원이 됐다. 공부는 크게 하기 싫고 운동장에서나마 맘껏 뛰고 싶어서였다. 키가 크고 체격과 체력이 좋은 여학생들은 농구와 배구부에 들어갔다.

  나는 체력은 딸리지만 운동신경은 좋았기에 최종 수비수로 활약했다. 그때 같이 뛰며 주장을 한 같은 반 친구 이강0이라는 친구는 아예 축구인의 길을 평생 걷게 된다. 강0이는 공격수였는데 빠르고 발재간이 좋아 돌파력이 대단했다.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후에 체육중학교, 체육고등학교를 1기로 들어가고 서울대를 진학한 후 프로 팀에서도 활약하고 지금은 모교에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다고 한다.

  축구부원 전부가 체계적으로 축구를 배운 것 이때가 처음이다. 동네 골목길이나 공터에서 소위 ‘동네축구’ 정도 하던 아이들이 기초 체력부터 규칙킥, 드리블, 슛, 헤딩, 등을 배웠다. 복장부터 신발까지 모든 건 자비 부담이었다. 학교에서는 축구공과 골대의 그물 정도만 지원하고 나머지는 모두 선수 부담이었다. 이러다 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은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감독 선생님은 별로 기억이 나지 않고 코치 선생님은 젊은 분이셨는데 아마 대학생 선수가 아니었나 싶었다.

  방과 후 모여 연습을 하다가 해가 서서히 지고 배가 고파질 때면 훈련은 끝이 난다. 운동에 고단한 몸을 이끌고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채로 집을 가는데 앞에는 ‘효제’ 뒤에는 ‘등번호’가 있어 모든 사람이 나를 보는 것 같아 괜히 어깨가 으쓱 거렸다. 나는 아무래도 운동을 ‘폼’으로 한 것 같다.
 
  그럴 즈음 우리 학교에서 ‘일요 축구교실’이 생겼다. 유명 축구인이셨던 김덕준 선생님이 사재를 털어 한국 최초의 ‘유소년 축구교실’을 열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유명 선수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유소년 축구교실을 여는 게 일반화됐지만 이미 1970년에 선각자는 따로 있었다.

  ‘일요 축구교실’은 따로 장소가 없다 보니 효제초등학교를 임시로 빌려 일요일 오전마다 열었는데 서울 각지의 초등학교 축구부원들이 매주 삼사백 명씩 몰려들었다. 김덕준 선생님은 아주 멋진 분이셨다. 금테 안경을 쓰고 머리는 적당히 벗겨지고 한눈에 봐도 축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셨다. 코치 두 명 함께 축구공 수십 개를 큰 그물에 담고 직접 들고 오신다. 까만 서류 가방에는 은행에서 바꾼 신권 10원짜리가 가득했다. 이 돈은 멀리서 걸어 오는 학생들을 위한 ‘차비’였다. 훈련이 끝나면 학생들이 한 줄로 서서 차비를 받아 간다. 돈을 내기는커녕 돈을 받고 운동을 한 셈이다. 김덕준 선생님은 사재를 털어 훈련을 시킨 것이다.
  당시 짜장면이 한그릇에 3~40원 하던 시절에 10원이면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꽤 괜찮은 돈이었다.

  효제초등학교 축구부원들은 자기 학교에서 하다 보니 늘 일찍 나와 운동장에 라인도 긋고 여러 가지 뒷수발을 했다. 그러면 김덕준 선생님은 따로 우리들을 불러 점심에 설렁탕을 사주셨다. 선생님은 내가 총기가 있어 보는지 독일에서 만든 축구에 대한 기초 이론서를 번역한 책을 주셨는데 이 책에는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수록되어 있었다. 아마 독일에서도 유소년용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선생님은 나에게 책을 잘 읽고 축구는 꼭 선수만 있는 게 아니라 이론가도 필요하다고 하셨다. 아마 일찌감치 내가 선수 자질이 없다고 판단하신 것 같다.

  ‘일요축구교실’에 나가다 보니 가끔 동대문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외국과의  경기에 ‘볼보이’로 차출되는 ‘영광’을 갖기도 했다. 그래서 ‘에우제비오’의 경기를 눈앞에서 보는 잊지 못할 추억을 갖게 된 것이다. 또 당시 축구 스타였던 이회택, 박이천, 김호, 김정남, 정강지, 이차만, 김재한 선수등의 경기도 요즘말로 “직관”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결국 나는 선생님의 혜안대로 ‘선수’도 못되고 ‘이론가’도 못 되었다.
  축구는 초등학교에서 접었다.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고 전학을 간 학교에서도 축구를 했는데 공부도 곧잘 하다 보니 담임 선생님이자 감독 선생님이 한국 최초의 체육중학교에 나를 추천해주셨다. 국립이고 전액 장학생에다가 기숙사 생활을 한다는 게 마음에 들어 응시를 했는데 당시 신문로에 있던 서울고등학교에서 시험을 봤다. 구기와 육상 등 전국 각지에서 운동 좀 하는 학생들이 모여 체력, 필기, 실기 등을 보는데 축구의 경쟁률이 10대 1로 제일 높았다. 여기서 효제에서 같이 운동한 이강0 친구도 만났다. 결과는 보기 좋게 낙방이었다. 덩치 좋고 기량 좋은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형같이 보이는 학생들도 많았다. 아마 중학교 1,2 학년쯤 다니다가 온 것 같다. 강0이는 무난히 합격하여 후에 체육고까지 갔다. 필기시험은 초등학교 4학년 정도의 수준이라 5분 만에 쓰고 나왔는데 공부만 잘한다고 운동도 잘 하리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여기서 나의 짧은 ‘축구 인생’은 끝이 났다. 나는 체력도 안 되지만 더 이상 공을 차지 않고 경기를 보기만 한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남자들의 축구사랑은 대단했다. 유년 시절부터 공과 장소만 있으면 줄기차게 공을 찬다. 군대에서도 ‘군대스리가’라 하여 틈만 나면 공을 찬다. 성인이 되어도 ‘조기축구’를 하며 공을 찬다. 그런 결과가 아마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의 신화를 낳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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