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4-24 10:34
제 28 편 반공방첩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190

제 28 편

 반공방첩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며칠 후면 개학을 하지만 수업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다 보면 봄 방학이 시작된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이 발칵 뒤집혔다. 아니 나라전체가 일대 충격에 빠졌다. 이른바 1·21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1968년 1월 21일 청와대 뒷산까지 침투한 무장공비 31명이 서울에서 시가전을 벌인 것이다. 방학이다 보니 느지막이 잠을 깼는데 부모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라디오에서는 계속해서 긴급 속보가 방송되고 있는데 될 수 있는 대로 집안에 있으라는 둥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바로 경찰이나 군부대에 신고하라는 둥 하며 숨 가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뭔 일인가 싶어 부모님 얼굴을 살펴보니 한국전쟁을 겪은 부모님의 안색이 어두웠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는데 나는 추운 줄도 모르고 살며시 방을 빠져 나와 거리를 살펴보았다. 거리에는 군인을 잔뜩 태운 군 트럭이 헌병 선도차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앞세우며 동대문에서 종로 쪽으로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 당시에 병원 입구 좌측에 파출소가 하나 있는데 입초 경관이 경찰모의 턱 끈을 아래로 내리고 집총을 한 채로 경계를 하고 있었다.

  뭔가 큰일이 나도 크게 난 모양이다. 파출소는 평소에도 입초 경관이 근무를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하고 아는 체도 하고 아이들하고도 웃으면서 쉬엄쉬엄 근무를 서는데 오늘은 달랐다. 잔뜩 눈에 힘을 주고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나를 보더니 어서 집에 가서 꼼짝 말고 집에 있으라 했다. 나는 겁도 나기도 하고 계속해서 군 병력이 이동하는 걸 보고 정말 큰 일이 났다라는 걸 직감했다.

  신문은 호외를 발행하며 시시각각 ‘전황’을 발표했다.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김신조’라는 공비가 생포돼 기자회견을 하고 모든 사람은 치를 떨었다. 소위 ‘빨갱이’의 무서움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빨갱이뿐만 아니라 괴뢰군, 김일성, 공산당은 부모님을 죽인 원수 보다 더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1. 21사태가 나고 이틀 후인 1968년 1월 23일에는 동해에서 미 해군 정보 수집함인 ‘푸에블로호’함이 납치됐다. 이 사건은 나에게는 기억은 거의 없다. 그냥 주변에서 어른들이 걱정하며 혹시 한반도에 6. 25와 같은 전쟁이 또 일어나지 않나 하는 걱정 들 뿐이었다. 1. 21사태처럼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도 아니고 멀리 동해에서 벌어진데다 미군의 일이었다.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크게 심각성을 못 느끼고 어른들에게 주워들은 이야기로 이러쿵저러쿵 하지만 다 부질없었다. 초등학교 3~4학년 아이들이 뭘 얼마나 알겠는가.
 
  얼마 후 개학을 했다. 담임 선생님은 평소와 달리 ‘북괴’의 잔학성과 공산당의 허구성을 교육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봄방학마저 끝내고 4학년으로 진학을 했다.

  학교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우선 학교 건물 여기저기 ‘반공방첩’ 등의 큰 글씨가 붉은 페인트로 적혀지고 반공 교과목이 강화되었다. 미술 시간에는 반공 포스터를 그려야 했고 이 중에서도 북괴군이나 공산당을 악마처럼 잘 표현한 것은 교실 뒤 솜씨 자랑 게시판에 걸리기도 하였다.

  반공 웅변대회도 수시로 열렸다. 나는 순전히 목소리가 맑고 또박또박하다
는 이유 하나로 담임 선생님이 써 주신 원고를 가지고 교내 웅변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이 한 몸 다 바쳐 공산당을 쳐부수겠다고 이 연사 소리 높여 외칩니다~~”등의 다소 상투적인 문장이지만 이 대목만 나오면 청중 학생들은 발을 구르며 주먹을 높이 쳐들고 같이 외치곤 했다.

  반공궐기대회도 수시로 열렸다. 동대문 운동장 등에서 연사가 나와 열변을 토하며 반공방첩을 외쳐대고 우리는 동원되어 수시로 손뼉을 치거나 구호를 연호하며 호응했다. 그래야만 되는 줄 알았고 우리는 모두 빨갱이들을 곧 때려잡을 기세였다.
  궐기 대회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김일성 화형식’과 ‘혈서’쓰기다. 사람들은 ‘불’이나 ‘피’를 보면 보면 흥분을 한다. 몇몇 어른들과 고등학생 형들은 불길에 타고 있는 ‘김일성’을 향해 발길질하며 온갖 욕을 한다. 한편에서는 흰광목천에다 손가락을 자른, 혹은 상처를 내어 붉은 피로 “멸공”을 써내려간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손뼉을 치며 환호한다. 이렇듯 궐기대회를 하고 나면 사람들은 뭔가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이다. 아이들도 무슨 큰일을 해낸 것처럼 표정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있는 힘을 다해 구호를 외치다 보면 목은 잠겨있고 하도 박수를 ‘열렬이’치다보면 손바닥이 얼얼했다. 그래도 뿌듯했다. 내가 열심히 손뼉치고 구호를 외치다 보면 불구대천의 원수 김일성이가 곧 죽을 것 같고 공산당이 곧 망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반공글짓기 대회도 자주 열렸다. 가장 격렬하고 살벌한 표현으로 문장을 만들면 무조건 수상을 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에서는 반공드라마를 만들어야 했고 이런 프로그램이 인기도 끌었다.
  반공만화, 반공포스터, 반공표어 등도 지속적으로 정부가 대국민 계도를 위해 만들어 냈다. 
  향토 예비군이 창설되어 학교 운동장이 졸지에 연병장이 되었다.

  이렇게 온 나라가 반공방첩과 공산당 타도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을 때1968년 10월에 ‘울진삼척무장공비침투사건’이 벌어졌다. 역시 서울에서 한참 떨어진 강원 삼척과 경북 울진에서 벌어진 일이라 서울에 사는 우리에게는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연일 신문과 라디오에서는 난리가 나고 온 나라가 시끄러웠지만 내 곁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서 그런지 별로 실감을 못하고 있었다.

  이 사태가 벌어지고 난 후 최고의 ‘반공스타’가 탄생했다. 바로 반공소년 ‘이승복’이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고 죽었다는(?) 애국 소년의 표상 이승복. 우리 같은 아이들에게는 이승복야말로 당대 최고의 반공투사였다. 우리 같은 아이들은 서로 모이면 “너 같으면 그렇게 말하고 죽었겠느냐?”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했는데 주변의 눈치를 슬슬 보며 결국은 모두 결연한 표정으로 “나도 그렇게 말하고 죽겠다.”라고 말을 한다.세뇌의 힘이다.

  울진 삼척사태도 어느 정도 진정된 후 학교에서는 반공 학생 ‘이승복 동상 세우기’ 운동이 벌어졌다. 당시 앞뒤로 해서 ‘충무공 이순신장군 동상 세우기’를 하며 전국 어느 학교에 가도 동상이 있는데 이번에는 ‘이승복’이다.  그러나 그냥 세우는 게 아니었다. 학생들의 반공의식을 고취한다고 해서‘성금’을 모은 것이다. 집에서 버리는 폐지, 공병 등을 수집하고 아이들 코  묻은 용돈을 모아 동상 건립기금을 만드는 것이다. 한 푼 두 푼 모아 어느덧 동상이 만들어졌다. 학교 본관에서 제일 좋은 곳을 골라 좌대를 세운 후 도
시락 가방과 책보를 어깨에 멘 늠름한(?) 반공소년의 전신상을 세운 후 우리는 동상 앞에서 이를 갈며 공산당을 쳐부수고 북괴군을 물리치며 김일성을 때려잡겠다고 굳은 결의를 했다.
  조악한 콘크리트로 만든 동상이지만 학교에서는 당번을 정해 관리를 했다. 아이들은 등하교할 때마다 이승복 동상을 보며 반공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확인한다.

  학교 교실 복도에는 온통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는 내용으로 도배되고 학과 공부보다는 북한의 실상과 남한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도발적인 문구와 포스터로 장식되어있다.

  온 나라가 반공방첩의 시대다. 반공방첩만이 우리가 살길이고 나아갈 좌표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도 없거니와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듯하지만 그 시절에는 ‘반공방첩’만이 먹고 살 길이었다. 그야말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총력 “심리전”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표어 몇 가지를 소개하면 시대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총력안보 이룩하여 북괴망상 분쇄하자’
  ‘무찌르자 공산당.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북괴군’
  ‘반공방첩 철저하면 우리나라 부흥한다’
  ‘북괴남침 예고없다 자나깨나 총력안보’
  ‘간첩은 표시없다 우리주변 잘 살피자’
  ‘수상하면 신고하여 애국애족 이룩하자’
  ‘안보에는 너나없고 대공전선 밤낮없다’
  ‘힘에는 힘으로 도발하면 때려잡자’

  지금 몇몇 보수단체 회원들이 6, 70년대로 시계를 돌려 그 당시의 모습을 친절하게 재연해준다. 추억의 흘러간 영화를 보여줘 고맙기는 한데 많이 안쓰럽다.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아직도 6,70년대로 보고있는 이 무지몽매한 사람들은 남북통일 되면 무엇으로 먹고살까? 심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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