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4-20 10:58
제 26 편 여자 누드를 보다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261

제 26 편

 여자 누드를 보다                                             

  제목이 도발적이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성인 여자의 벗은 몸을 보다니 망측한 짓이다. 그러나 독자들이 조금은 이해해주기 바란다. 달리 무슨 뜻이 있거나 조숙해서가 아니라 순전한 호기심의 차원이었고 ‘성장통’의 과정으로 봐주면 좋겠다.

  60년대 당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은 동숭로 즉 연건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내가 다니던 종로 5가의 효제초등학교와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지금도 그러겠지만, 반에 서너 명쯤은 성적으로 조숙한 아이가 있게 마련이다. 당시에도 그런 아이가 있었다. 지금 이름은 기억이 나지 못하지만 표정은 생각이 난다. 작은 체격에 얼굴이 동그랗고 늘 눈이 반짝거리며 오락시간에는 탁자 위에 올라가 유행가를 잘 부르던 아이였다.

  3학년까지는 남녀 합반이다 보니 짓궂게 여학생들에게 장난을 치는 아이도 있다. 괜스레 여자아이 치마를 들치거나 가슴을 만지려고 하는 아이들이다. 치마를 들칠 때는 꼭 ‘아이스깨끼’를 외치는데 난 지금도 이 뜻을 모르겠다. 아직 어린 여학생이다 보니 가슴도 없는데 굳이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다.

  학교 변소에 가면 꼭 적혀있는 낙서가 있다. ‘누구는 누구를 좋아한다’,누가 누구를 어떻게 했다.’라는 등의 유치한 내용이지만 어느 학교에든지 반드시 적혀있게 마련이다.

  ‘까진 친구’ 녀석이 어느 날 나에게 제의를 한다. 미대 쪽에 가면 홀딱 벗은 여자의 몸을 볼 수 있다고 나를 꼬드긴다. 녀석은 유달리 ‘홀딱 벗음’을 강조를 한다. 나는 뭔 소리냐고 되물었지만 아무 말 없이 나를 끌고 서울미대 쪽으로 갔다. ‘홀딱 벗은 여자’라는 녀석의 말이 계속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어머니와 여탕을 몇 번 가봤지만, 그때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실로 몇 년 만에 ‘홀딱 벗은 여자’의 몸을 본단 말인가? 나는 은근한 기대 속에 녀석의 뒤를 쫄랑거리고 따라갔다.
 
  동숭동은 서울 문리대, 의대, 치대, 미대 등이 모여 있었는데 나는 사실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고 있었다. 친구 녀석은 자기 집이 근처라 그쪽 지역을 훤히 꽤 뚫고 있었다. 녀석은 학교 구내에 들어가 요리조리 한참을 가는데 나는 처지지 않으려고 녀석의 뒤통수만 보고 갔기에 어디가 어딘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윽고 어느 건물 앞에 섰다. 친구는 여기서부터는 조심해야 한다고 만약 수위 아저씨에게 걸리면 우리는 죽는다고 엄포를 놓았다. 순간 나는 가슴이 벌렁거리고 다리가 후들댔다. 녀석은 건물 주변을 조심스럽게 관찰하더니 잽싸게 물감 통이며 조각난 작품들로 가득 찬 창고 같은 허름한 곳으로 뛰어들어갔다. 나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녀석을 놓칠세라 부지런히 따라 들어갔다. 다음부터는 어디서 어떻게 들어갔는지 정신이 없다.

  드디어 도착한 곳은 미대생들이 ‘누드크로키’를 수업을 하는 강의실이었다. 창가로는 볼 수 없고 바닥아래 철창 환기통을 통해 교실을 일부 엿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학생들과 ‘이젤’ 사이로 얼핏 보이는 ‘홀딱 벗은 여자’의 몸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모델은 수시로 자세를 바꾸는데 정면이 보일 때는 숨을 못 쉴 정도였다. 가슴은 벌렁거리고 다리에 알 수 없는 힘이 들어갔다. 친구는 연방 마른 침을 삼키며 ‘감상’을 한다. 여자에 대한 자각이 생긴 후 처음 보는 ‘여자의 벗은 몸’이었다. 이때의 충격은 꽤 오래갔다.

  몇 년 후 동네 목욕탕에서 불이 났다. 천하의 제일 재밌는 구경이 ‘싸움구경’, ‘불구경’, ‘물난리’라고 하는데 온 동네뿐 아니라 인근 동네 아이들까지 ‘불난 집’으로 총출동했다. 한걸음에 달려갔는데 소방차는 이미 출동을 해 물을 뿌리고 사람들이 우왕좌왕 허둥거리고 있었다. 희한한 건 구경꾼들은 대부분이 남자들이고 모든 시선은 ‘여탕’에 가 있다. 손님들이 워낙 많아서인지 아직도 대피 중인데 남자들은 그냥 목욕 대야나 수건으로 아랫도리를 가리고 뛰쳐나오는데 여자들이 문제였다. 할머니나 어린 여자아이들은 그냥 뛰쳐나온다. 하긴 특별히 가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문제는 ‘젊은 여자’들이다. 이들은 주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잔뜩 수그리고 나오는데 간혹 한 손은 얼굴을 또 다른 손은 국부를 가리고 나오는 여자도 있다. 그때마다 구경하던 남자들의 안타까운 비명인지 재미있다는 건지 모를 함성과 탄식이 터져 나온다. 근처에 있던 아낙들은 그런 남자들에게 악다구니를 퍼부으며 수건이고 옷을 준비하고 있다가 몸을 덮어주기도 하고 아무 가겟집에 몸을 밀어 놓기도 한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화재 열기와 연기와 사람들의 악다구니로 일대는 엄청난 혼란에 빠졌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녀노소의 벗은 몸을 한 번에 본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다행히 사상자 없이 화재는 진화됐지만, 불이 그렇게 무서운 줄도 처음 알았다.
  요즘은 산불 등 화재가 자주 일어난다. 자나 깨나 불조심을 해야 한다. 그야말로 꺼진 불도 다시보자.

  지금도 그 당시를 기억하면 혼쭐이 난 분 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혼자 웃음이 배어 나온다. 그때 우리 학교 여선생님도 계시고 여학생도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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