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4-19 13:19
제 25 편 용의및 신체검사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190

제 25 편
                         
 용의 및 신체검사

  매년 신 학년이 되면 반드시 해야 하는 과정이 있다. 바로 신체검사다.
학기가 어느 정도 진행된 따뜻한 봄날. 담임 선생님께서는 미리 날짜를 알려 주신다. 아이들은 이날을 대비해 평소 자주하지 않던 목욕도 하고 머리도 단정히 하며 소위‘때 빼고 광내고’학교를 간다.

  이날은 수업이 없다. 하루 종일 신체검사를 한다. 내용은 별것 없다. 기본적인 신장, 체중, 가슴둘레, 앉은키, 시력, 청력, 치아 상태 등을 측정하고 다음은 청진기로 가슴을 대보고 이동식 엑스레이 검사기로 가슴 사진을 찍는다. 이 모든 측정값은 ‘학생건강기록부’에 꼼꼼하게 기재가 된다. 기록부는 전학을 가더라도 학적부와 함께 반드시 다음 학교에 넘겨지게 되는 중요한 기록이다.

  그리고는 한 명 예외 없이 구충제를 먹는다. 아이들이 먹기 좋게 ‘미루꾸’(당시에는 캐러멀을 그렇게 불렀다)처럼 포장하고 갈색의 부드러운 사탕 맛이어서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식사 전 이면 양해를 바란다. 당시에는 위생 상태가 안 좋아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기생충을 몸에 지니고 살았다.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어도 기생충이 뱃속에서 기생하고 있는 한 좋은 걸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기생충 박멸이 국가적 사업이 되었다.

  신체검사 며칠 전 학교에서는 채변 검사를 하기 위해 조그만 봉투 하나씩을 미리 나누어 주었다. 누렇고 약간 두툼한 갱지에는 학교, 학년, 학급, 이름 등을 기재하여 채변 봉투 속 비닐에 자기의 ‘똥’을 받아야 했다. 당시에는 거의가 푸세식(재래식) 변소였기에 변소 뒤 맨땅에다가 신문지 한 장 깔고 똥을 눈 다음 나무젓가락으로 대추만 한 크기로 잘라 채변 봉투에 담아야 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긴장하면 잘 안 되는 법. 늘 똥을 잘 누던 아이도 숙제처럼 여겨서 생각만큼 똥이 나오질 않으면 친구 똥이나 가족이 싼 똥, 심지어 개똥까지 가져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나저나 다 안 되는 아이들은 학교 변소 뒤에 가서 반장의 감시 속에 단체로 똥을 싸야 하는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은 기생충이 있다고 간주하여 몽땅 약을 먹이는 것이다. 문제는 구충약을 복용하고 변소를 가면 난리가 아니다.  변소 밑에 지렁이만 한 크기에서 새끼 뱀 만한 크기의 온갖 다양한 기생충들이 그야말로 바글바글하다. 어른들은 거기에다 석유를 뿌리거나 하여 기생충을 죽인다. 한 이틀 이렇게 쏟고 나면 아이들의 얼굴색이 훤하게 밝아진다. 평소 누렇게 뜬 얼굴이 가시며 발그스레한 피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만큼 거의 모든 학생들은 몸에 기생충을 지니고 살았다.

  담임 선생님이 아무리 사전에 일정을 알려주고 준비를 하라고 했건만 부모들이 살기 어렵고 바삐 사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팬티 등 속옷을 입지 않은 아이도 제법 됐고 제대로 씻지를 않아 몸에 때가 덕지덕지 있어 검사하는 선생님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 구멍 난 속옷, 양말에 빈곤의 그림자가 여기저기 보인다.

  그나마 남학생들은 참고 견딜만하다. 아무리 어린 아이들이라 해도 여학생은 여자다. 여기저기 여자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울음보가 터지기 일쑤다. 특히 고학년이 되면 조숙한 여학생들은 생리도 시작하고 2차 성징도 나타나는데 자존감 강한 여학생들은 심리적으로 얼마나 위축됐을까? 이때 잘못 보인 아이들은 별명이 생기게 마련인데 이 별명이 수 십 년이 지난 동창회에서도 불리는 걸 보면 한번 각인된 것은 평생 가는 모양이다.

  학교에서는 수시로 용의 검사를 한다. 평소 자기 위생관리를 잘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지금 같으면 부모들이 어련히 알아서 챙겨주겠지만 그 시절에는 형제들도 많고 다들 어려운 시절이라 그런지 자기가 스스로 하지 않으면 누가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

  종례 시간에 갑자기 선생님이 용의 검사를 한다. 손톱, 발톱, 세면, 치아, 속옷 상태 등을 눈으로 보이는 것들을 살피는데 아이들 대부분이 지적을 당한다. 손톱을 제때 자르지 않아 마귀처럼 기른 아이와 이로 물어뜯어 손톱이 들쑥날쑥하기도 하고 얼굴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목뒤로 새까만 때가 있어 검정 목도리를 한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도 많았다. 양치를 제대로 못해 이빨은 충치로 가득하고 냄새 또한 심했다. 선생님 앞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검사를 받을라치면 자격지심에 입을 조그만 벌리다가 야단을 맞기도 한다.

  종기나 부스럼도 많아 사내아이들은 머리에 ‘땜통’(기계충)이라 하여 머리를 깎을 때 소독 안 된 이발기로 머리를 밀다가 흔히 생기는 피부병을 달고 살았다. 여자아이들은 머리를 길다 보면 ‘이’가 생긴다. 있는 집 아이들은 어머니나 식모가 아침마다 참빗으로 머리를 곱게 빗어 학교에 보내지만 없는 집 아이들은 언제 머리를 감았는지 모르게 머릿기름이 흐르고 ‘이’나 ‘서캐’가 득실득실했다.
  얼굴에 ‘버짐’은 웬만한 아이들은 다 갖고 있기에 일도 아니다.

한 반에 보통 70여 명이 넘다 보니 누가 하나 전염성이 강한 질병이 걸리면 순식간에 퍼지기 일쑤여서 담임 선생님이 늘 개인위생을 강조하지만 일일이 아이들을 챙길 수도 없고 하여 문제가 되곤 했다.

  복장도 검사를 하는데 당시에는 고급 브랜드 개념이 거의 없기에 누가 좋은 옷을 입고 아니고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깨끗하게만 입으면 됐다.
  남자아이들은 봄부터는 거의가 반바지를 입는데 날이 조금 추우면 긴 양말을 신지만 아주 있는 집 아이 아니면 그냥 맨살이다. 그래도 누구 하나 춥다고 하지 않는다. 팬티와 러닝셔츠 그리고 반바지에 티셔츠 한 장 걸치면 옷은 다 입었다.

  문제는 속옷을 제대로 입지 않은 아이들이 제법 됐다. 거기다 반바지의 앞 단추나 지퍼가 고장 나서 그 사이로 작은 고추와 호두만 한 불알이 덜렁 거리고 튀어나와 여자아이들이 기겁을 하곤 했다. 러닝셔츠는 대개 형이 입던 옷을 물려받거나 혹은 오래되 여기저기 기워 입은 것이다. 이런 옷은 아이들도 잘 안 입으려고 하지만 어머니에게 다음 해는 꼭 사준다는 다짐을 받고나 아니면 등짝을 한 대 맞고서야 억지로 입는다. 한참 뛰어놀 아이들이기에 바지 엉덩이 쪽은 점점 얇아지다 급기야 터져 팬티가 보이거나 맨 볼기살이 다 보이기도 한다. 단추로 여미게 된 옷들은 단추가 자주 떨어져 달아야 하는데 맞는 짝이 없이 단추가 제각각이다.

  아이들은 그런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소위 유명 브랜드도 없고 옷의 질이 전체적으로 ‘하향평준화’되어 위화감도 크게 없을뿐더러 설령 아주 좋은 제품 옷은 부모들이 입히지 않았다. 당시에도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을 상대로 '네다바이’(사기)를 하는 못된 어른들이 있었기에 가급적 삼갔다 . 학교에서도 복장 검사를 하게 되면 옷이 깨끗한가, 속옷은 입었는가, 제대로 수선은 하고 입는가 정도만 검사를 했다.

  신발은 남녀 아이들은 천으로 만든 검정 운동화나 빨간 운동화를 주로 신었고 검정 고무신을 신는 아이들도 제법 있었다. 고무신을 신는 아이들은 대개가 맨발인데 고무신 위의 발목은 새까맣고 그 아래는 하예 가지고 고무신을 벗으나 신으나 마치 늘 신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천으로 만든 운동화는 자주 해져 굵은 실로 꿰매기도 하고 신발 바닥 고무창이 쉽게 달아 구멍이 나 비가 오면 양말이 다 젖기 일쑤다.

  참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그러려니 하고 지냈다. 누가 좋은 옷을 입어도 부럽다거나 하지 않고 싸구려 옷을 입어도 위축되지 않았다.

  지금은 어른 옷값 뺨치는 고급 브랜드의 좋은 옷을 입히고 온갖 비싼 걸로 치장을 해서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는데 아이들이 크게 행복해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진정한 행복은 비싼 옷과 학용품이 아니라 또래 친구들과 건강하게 잘 어울려 놀고 아이들 스스로 행복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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