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4-10 10:01
제 20 편 외갓집의 방학생활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343

제 20 편
                                           
외갓집의 방학생활

  드디어 서울내기의 ‘시골생활’이 시작됐다.
  어제 외가에 왔지만 나도 모르게 눈이 떠져 일찍 일어났다. 제일 큰 변화를 느끼는 건 아침에 눈을 뜨면 공기가 달랐다. 상쾌하고 온몸의 독소가 빠져 나가는듯한 기분이다. 그리고는 구수한 냄새가 난다. 외할아버지는 벌써 일어나시어 소여물을 끓여 외양간에 매어둔 소에게 주고 계신다. 외할머니는 부엌에서 아침 준비에 바쁘시다.

  시골은 아침이 이르다. 날이 뜨거워지기 전에 서둘러 논이고 밭일을 해야하기에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그렇잖아도 외할아버지는 벌써 한 바퀴 돌고 오셨다고 한다.

  외가는 초가집으로 안방, 대청, 사랑방, 행랑채, 부엌, 외양간, 창고로 이루어 졌다. 평창이씨 장손답게 마을에서는 제일 크고 동네에서는 ‘큰집’ 혹은 ‘큰댁’으로 통했다. 기와집은 한 채도 없고 전기, 수도는 구경도 못 했다.

  안방은 외조부모님과 함께 생활하고 사랑방은 마을의 서당이었다. 동네 더벅머리 총각들이 외조부 앞에서 한문책을 소리 높여 읽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행랑채는 인근에 근무하던 군인 가족인 ‘장중사 아저씨’가 살았는데 후일 나의 수양 외삼촌이 되었다. 아저씨가 따로 살림을 나간 후에는 ‘박서방’이라고 불리는 술 좋아하는 평안도 출신 머슴과 외가 일을 거들던 눈에 장애가 있는 식모 아줌마가 살림을 차려 살고 있었다.

  외양간에는 소가 한 마리 매여 있고 어디나 그렇듯 놓아 키우는 닭 십여 마리가 한가롭게 마당에서 모이를 먹는다.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다.

  마당 가운데는 우물이 있고 옆에는 ‘뽐뿌’(펌프)가 있는데 마중물을 붓고 ‘뽐뿌질’을 하면 한여름에는 시원한 물이, 한겨울에는 미지근한 물이 올라와 세수하기에 제격이었다. 
  대청마루 기둥에는 마당을 향해 ‘스피커’가 달려있는데 군용 삐삐선이 길게 뒷산으로 이어져 있고 다이얼도 없고 볼륨도 없이 하루 종일 방송이 나오기도 하고 안 나오기도 하기를 반복했다.

  변소는 대문 밖에 있는데 흙벽돌과 짚으로 엉성하게 엮어서 안과 밖이 훤하게 보이기도 한다. 뒤를 보고 나면 옆에 있는 삽으로 재를 한번 뿌려 덮으면 끝이다. 서울내기인 나는 처음 시골 생활 중에 제일 힘들었던 것이 용변이었다. 나중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적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밤에는 호롱불이나 남폿불로 어둠을 밝혀야 했다. 남폿불은 심지를 자주 청소하지 않으면 연기가 나기도 했고 유리병을 늘 깨끗이 닦아나야 빛이 밝았다.

  안방에는 1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연력이 있다. 당시 포천군을 지역구로 둔 민주공화당의 오치성 국회의원이 나누어 준 걸 어느 집을 막론하고 안방에 붙여 놓고 사용을 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건 가운데는 본인의 사진을 넣고 공화당의 상징인 황소가 큼직하게 그려져 있으며 ‘황소처럼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인쇄돼 있다. 오치성의 연력은 상당히 오랜 기간 붙어 있었다.

  서울내기인 나는 처음에는 문화적 충격(?)을 적지 아니 받았다. 하지만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있어서인지 처음에는 낯설고 힘들었지만 며칠 지나고 나니 어느덧 ‘촌 아이’가 돼가고 있었다.

  외가는 외조부가 제일 맏이고 밑으로 네 분의 외종조가 계신다. 외조부는  농사는 소작을 주고 평생 글을 읽으시는 소위 ‘한학자’이셨다. 겨우 하시는 일은 지게를 지고 어쩌다 산에서 땔감을 하시는 정도였는데 나에게도 작은 지게를 만들어 주시어 외조부를 따라다니곤 했다. 외조부는 평생을 위궤양에 시달리셔 ‘소다’를 입에 달고 다니셨는데 그래도 천수를 누리시고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큰 집의 큰 딸이라 막내 작은 아버지와 두세 살 정도 차이가 났고 그 위에 작은 아버지들도 어머니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외종숙들이 나보다 어리거나 나이가 비슷하지만 전부 삼촌, 이모들이다. 내가 항렬이 낮았던 것이다. 지금이야 나이에 관계없이 존칭을 쓰며 삼촌, 이모로 대우하지만 당시에는 항렬에 관계없이 나보다 어리면 내가 하대를 했다. 그러면 어른들이 손 위 사람에게 그러면 못쓴다고 나를 나무랐다. 나는 그게 억울해서 어른들이 안 보이면 더 심하게 하대를 했다. 외종숙들은 ‘트라우마’ 인지 지금은 나이 많은 조카인 나에게도 깍듯하게 경어를 쓴다.

  아침에 눈만 뜨면 소죽골 마을은 온통 나의 놀이터였다. 서울 종로에 살고 있으면 절대로 경험하지 못할 귀중한 시골체험을 맘껏 했다. 거기다 나이가 비슷한 외종숙들의 시기와 사랑을 동시에 받았기에 내 세상이었다. 아침에 밥 한술 뜨면 점심, 저녁은 아무 집이나 가서 먹었다. 마을 전체에서는 평창 이씨가 아닌 집은 두 집뿐이고 전부 친인척으로 연결돼있어 어느 곳을 가도 환영이었다. 다만 점심은 감자나 고구마 혹은 누룽지를 주로 먹었지만 내 입에는 잘 맞았다.

  여름에는 마을 개천에서 살다시피 해서 온몸이 볕에 그을려 서울 아이의 티는 벌써 벗었다. 물놀이를 하다 보면 나만 “빤쓰”를 입고 거의가 벌거숭이였다. 그래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개구리, 방아깨비, 메뚜기 등등 온갖 벌레와 곤충을 잡아서 노는데 서울 종로에서는 구경도 못할 것들이다.
  산머루, 달래, 산딸기 등도 온 산을 헤집고 다니며 따먹는데 그 어떤 과일보다 맛있었다. 그러다 보면 북한에서 날려 보낸 소위 ‘삐라’가 산에 여기 저기 많았다. 그걸 주워 지서에 갖다 주면 연필과 공책을 주기도 했다.

  하루는 불발 박격포탄을 발견하고 군부대에 신고해 군인들이 출동해서 가져간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는 방학식날 혹시 시골에 가는 학생이 있냐고 물어 본다. 있다고 하면 ‘삐라’를 발견하면 무조건 파출소에, 폭발물을 발견하면 무조건 군부대에 신고해야 한다고 담임선생님은 신신 당부를 하셨다. 그리고 덧붙여 불발탄을 가지고 놀다가 사고 난 사례를 실감 나게 설명해주셨다. 교육의 힘이다.

  가끔 인근에 훈련 나온 미군들이 차량을 타고 이동하다가 우리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초콜릿이나 껌 등을 던져 주기도 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거지취급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상해 미군들을 향해 ‘쑥떡’을 먹이곤 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나는 미국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미군과 ‘양갈보’들이 뒤엉켜 짐승처럼 ‘그 짓’을 했다. 어려도 ‘그 짓’이 뭔지는 알기에 우리들은 멀리서 돌을 마구 던졌다. 그시절에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거나 화장을 요란하게 하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으면 ‘양갈보’라고 놀렸다. ‘양색시’, ‘양공주’라고 하기도 했는데 아이들
이 부르기는 무조건 ‘양갈보’였다. 그때의 문화적 충격이 남아서인지 나는 지금도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거나 화장이 요란하거나 혹은 노출이 심한 젊은 여자들을 보면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그렇게 들로 산으로 쏘다니며 신나게 외종숙들과 놀러 다니면 여름 긴 하루해가 짧았다.
  밤에는 아무 집이나 가서 아직 어린 외종숙들을 상대로 ‘구라’가 적당히 섞인 ‘서울이야기’를 신나게 한다. 아직 아무도 서울을 가보지 못한 외종숙들은 내 이야기가 진짜인 양 귀를 잔뜩 세우고 마른침을 삼키며 듣고 있다. 자동차, 빌딩, 창경원, 영화, 텔레비전, 만화, 학교 등등 아무 이야기나 ‘썰을 풀어대도 누구 하나 토를 달지 못 했다. 심지어 전기, 수도 이야기만 해줘도 ‘청중’들은 숨이 넘어갔다.
 
  개학 며칠 전 ‘방학생활’ 숙제 집은 한 줄도 채우지 못한 채 외가 친척들이 챙겨주는 다양한 물건들을 잔뜩 보따리에 담고 고행 길의 귀경을 한다. 외가에서 인사를 마치고 출발하려고 하면 외조부는 짚으로 엮은 달걀 한줄을 들고 나오신다. 마을 입구에 주로 군인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조그만 가게가 있는데 거기다 달걀 한 줄을 팔고 그 돈을 나에게 쥐여 주신다. 차비도 되고 남으면 내 용돈이 될 정도였다.

  겨울 방학에도 어김없이 포천 외가로 갔다. 겨울은 겨울대로 시골의 놀 거리는 풍성했다. 마을 앞 논이 얼면 썰매장이 된다. 거기서 앉은뱅이 썰매, 외날썰매, 군용 탄통 썰매 등을 타고 손이 터지는 줄도 모르고 신 나게 논다.
  외종숙이 만들어준 팽이를 가지고 놀기도 했다. 외종숙들은 나에게 잘 보이려고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만들어 주었다. 연을 만들어 달라고 보채면 바로 만들어서 내 코앞에 디밀었다. 외종숙들은 ‘슈퍼맨’이었다.
  밤, 고구마, 감자 등을 화로에서 구워 먹거나 부엌 아궁이에서 구워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외종숙들하고 눈 덮인 산에서 토끼몰이를 하여 잡은 산토끼를 가지고 토끼 탕을 해 먹기도 했다.

  칼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추운 겨울 들판에서 뛰놀다 보면 손이고 귀가 빨갛게 얼어 얼얼해도 개의치 않고 논다. 그러다 집에 가면 살살 가려우며 동상 증상이 나타나는데 외할머니는 이런 내가 어찌 될까 봐 손과 귀를 한참을 주무르며 말씀하신다. ‘큰 외손자가 외가에 와서 다치면 안 된다고’ 걱정을 하시는데 나는 별로 신경 안 쓴다.

  방은 부엌 아궁이에서 잡목 등을 태워 구들을 데우는데 내가 불장난삼아 너무 많은 나무를 집어넣어 부엌을 태울 뻔도 했다. 외할머니에게 처음으로 호되게 야단을 맞은 기억이 난다.
  한 분뿐인 외삼촌이 6·25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포탄이 부엌에 떨어져 불이 나며 한쪽 눈을 실명했기에 할머니의 화는 대단했다. 꼭 화재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고 외손자가 어떻게 될까 봐 그러셨을 것이다. 안방의 아랫목은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달아올라 탄내가 진동했다. 내가 큰 실수를 했다. 
  오래전에 외조부모님은 다 돌아가시어 허전한데 한 분뿐인 외삼촌마저 돌아가시고 유일하게 외숙모 한 분만 살아계신다.

  역시 ‘방학생활’은 한 줄도 채우지 못한 채 개학 며칠 전 서울로 왔다.
  다시 서울 생활을 하는데 이상하리만치 ‘시골 촌놈’이 돼버렸다. 전깃불은 너무 밝고 차량으로 인해 머리가 어지럽다. 도시의 소리가 소음으로 들린다. 공기도 탁하고 물도 맛이 덜했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다. 내 몸속에는 ‘촌놈’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게 틀림없다. 도시 생활의 편리함이란 게 별것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고 싶어도 가기가 그렇다.

  평창이씨 집성촌인 ‘소죽골’은 이제 유일하게 도시 생활에 지친 외종숙만 귀향하여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유년기 서울 아이가 유일하게 ‘시골 체험’을 할 수 있었던 기회는 영영 사라졌다.

  내 아이들에게 미안한 점은 나는 종로에서 나고 자랐지만 내 처도 종로가 고향이다. 내 아이들의 유년기 추억은 친가, 외가 할 것 없이 도시였다.

 미안하다 아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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