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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3-21 11:47
제 14 편 전도사 누나와 미국 할머니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271

제 14 편

  전도사 누나와 미국할머니

  갑자기 원인 모르게 많이 아팠다. 지독한 몸살에 걸린 것이다. 주말부터 시작된 몸살은 일요일까지 꼼짝 못하고 누워 있어야만 했다. 당시 아이들은
어지간하면 앓아눕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나 이번 몸살은 지독했다.

  나는 아버지가 병원에 근무함에도 병원 문턱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그냥 끙끙거리고 약과 아버지가 놔주시는 수액으로 버티고 있었다.
  약 기운에 비몽사몽하고 있는데 잠결인지 꿈결인지 머리맡에 누군가가 내머리를 짚고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었다. 눈을 떠서 보니 우리 집에 가끔 오는 ‘전도사 누나’였다. 늘 단정한 정장 차림에 미소를 띠는데 사실 누나라고 하기에는 나이 차이가 좀 났고 아가씨라고 부르기도 그렇고 했지만 그냥 누나라고 부르라기에 큰 누나라고 불렀다.

  우리 집은 특별한 종교를 믿지 않았다. 그렇다고 특정 종교를 배척하지도 않았다. 각자 알아서, 믿건 말건 간섭하지 않았다. 그래서 전도사 나 스님이나 목사든지 누구든 간에 우리 집에 쉬 발을 들여놓고 쉬고 가기도 했다. 어찌 보면 종교에 관한 이미 통일을 이루었다.

  ‘전도사 누나’는 아픈 나를 어루만지며 뭐라 알 수 없는 소리를 계속하는데 나는 뭐라고 하기도 귀찮고 해서 그냥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어머니에게 이제는 하느님 덕분에 괜찮아질 거라고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내 머리맡에 ‘파수대’라는 만화책과 간행물을 놓고 갔다.
  몸이 기도 덕분인지는 몰라도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 놓고 간 ‘파수대’ 만화를 보기도 했지만 도통 무슨 내용인지 감도 안 잡히고 비과학적인 것 같아 더 이상 읽지 않았다. 

  동대문 이대부속병원 사택에 살다 보니 병원을 놀이터 삼아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데 매주 일정하게 오시는 ‘미국 할머니’를 본다. 영국제 ‘랜드로버’ 지프를 직접 몰고 오시는데 연세가 아주 많이 들으셨다. 하얀 금발에 도수 높은 금테 안경 그리고 얼굴이 잔뜩 주름진 할머니는 우리말도 곧잘 했다. 아마 이대병원이 기독교 계열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나를 보면 반가워하며 핸드백에서 사탕이나 조그만 장난감을 손에 쥐고는 하느님 열심히 믿고 교회 다니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했다. 나는 그럴 때 마다 사탕 먹는 재미에 꼭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지만 지키지 못 했다.

  한 번은 차를 한번 태워주면 교회를 다니겠냐고 하기에 그러겠다고 하고
‘랜드로버’옆자리에 냉큼 올라탔다. ‘미국 할머니’는 나를 차에 태운 후 종로5가 쪽으로 운전을 하시는데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운전을 잘 하셨다. 태어나 처음 타보는 ‘외제차’였다. 그것도 ‘랜드로버’로 말이다.

  나는 당시의 기억으로 여유가 있으면 꼭 ‘랜드로버’를 타고 싶다. 그러나 할머니와의 약속은 못 지켰다. 개신교, 천주교, 불교 등 어떤 종교도 나에게는 흥미가 없었다. 물로 지금도 그렇다.

  크리스마스 전날 합창단의 노랫소리가 집 앞에서 울려 펴지며 복음을 전하는데 통 재미가 없다. 관심도 없다. 한참 호기심 많고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유별할 터이고 교회나 성당을 한 번쯤 가봤을 텐데 놀로는 갔어도 뭘 하러 가지는 않았다. ‘전도사 누나’나 ‘미국 할머니’는 소 힘줄같이 고집 센 나같은 녀석도 처음 봤으리라. 웬만하면 넘어왔을 텐데 꿈쩍도 안 했으니 많이 서운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평북 출신이시다. 평안도 출신 분들은 웬만하면 교회를 나간다. 기독교가 일찍 전파되었기에 어지간하면 당신이나 모든 가족들을 이끌었을 텐데 간혹 아버지 입에서 ‘예수쟁이’이라는 신자를 비하하는 소리가 나오면 의아하게 생각했다.

  67년으로 기억하는데 아버지가 늦은 밤 어느 노인을 모시고 집으로 오셨다. 우리들을 다 깨우더니 다짜고짜 노인에게 큰 절을 하라고 하신다. 우리 형제들은 영문도 모르고 큰절을 올렸는데 아버지와 너무 닮으셨다. 알고 보니 아버지 외사촌 형님이셨다. 월남 후 종로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유일한 혈육이었다. 문제는 큰아버지(아버지의 외사촌 형)가 멀리 경북 선산에서 목회 활동을 하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반종교적이지만 유일한 혈육인 외사촌 형님에게 까치는 차마 반감을 갖지 않으셨다. 물론 큰 아버지도 우리에게 기독교를 강요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내가 나중에 중학생이 된 후 방학이면 선산에 있는 큰아버지 댁을 가라고 선선히 허락도 하시고 큰아버지도 굳이 나에게 예배를 강요하지도 않으셨다. 
  종교적으로는 상당히 ‘프리’한 집안이었다.

  초등학교 친구 중에 아버님이 유명 목사님이 계셨다. 창신동에 있는 오래된 석조 교회였는데 교회 마당이 크다 보니 자주 놀러 갔다. 당시 홍모라는 친구였는데 아주 잘 살았다. 미제 전축이며 제니스 라디오, 릴 녹음기 등 없는 게 없었다. 집안에 냉장고가 있는 ‘있는 집’아이였다. 마당에 농구 골대까지 있는 그야말로 잘 사는 친구였다. 친구의 어머니는 한눈에 척 봐도 ‘인텔리’였다. 친구는 공부도 잘했지만 마음씨도 착했다. 하지만 나는 ‘성직자’가 가장 밑바닥에서 위를 우러러봐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생활수준이나 소득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행스러운 것은 친구의 아버지이자 목사님이 나를 좋게 봐주어 친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늘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요즘 한국 개신교는 참으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교계 지도자라고 하는 목사들이 불륜, 탈세, 사기, 공갈, 협박, 성폭력, 성추행, 세습, 폭력 등 일반 속인들도 하기 어려운 짓을 서슴지 않고 있으며 세계적인 초대형교회, 엄청난 신자, 수십 가지의 헌금을 강요하며 교회를 기업화한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성경 구절에는 ‘부자는 절대 천당에 갈 수 없다’고 나와 있는데 과연 천당 가기를 포기한 것인지. 외제차, 경호원, 억대 연봉, 호화 사택, 권력 등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의 목사님들이 과연 천당에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성직자이기에 수 많은 어린 양을 천국으로 인도하고 본인들은 지옥에 갈려
고 하나 궁금하다. 그만큼 제대로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물론 이 땅에 양식 있는 성직자가 훨씬 많겠지만 심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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