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2-27 09:42
제 7 편 사진관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429

제 7 편
       
사진관

  내가 살던 종로 6가 이대부속병원 옆에 사진관이 하나 있다. 조그만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있는데 집안에 무슨 행사가 있으면 거기서 사진을 찍곤 했다.    당시 카메라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잘사는 집이 아니면 카메라는 구경도 하지 못했다. 우리 집도 잘사는 집이 아니어서 카메라는 없었다. 하지만 백일이나 돌잔치 혹은 무슨 기념일이면 온 가족이 가장 좋은 옷을 골라 입고 잔뜩 멋을 부린 후 사진관을 가서 촬영하는데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유년기의 사진은 몇 장 없다. 백일, 첫돌사진,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 누나 혹은 막내와 함께 찍은 사진 등이 유일하다. 컬러 사진은 꿈도 못 꾸고 흑백 사진으로만 유년의 추억이 남아있다.

  사진관을 가면 한쪽에 간이 스튜디오가 있다. 배경으로 쓰이는 여러 가지 장면이 있는 판자가 있고 꽃병, 화분, 서적, 의자 등 이런저런 소품들이 놓여있다. 배경으로 쓰이는 판자에는 사내아이들을 위한 서부시대를 재현하여 선인장, 카우보이 모자, 장난감 권총 등이 있고 여자아이들을 위한 공주 분위기의 몽환적 배경도 있다.

  사진사는 미리 다양한 모양과 크기를 가지고 상담을 한다. 그런 후 배경을 고르고 거기에 맞추어 소품을 정한다. 그리고는 인물, 즉 우리 가족을 배치하는데 뭐라고 주문 사항이 많다. 멋진 촬영을 위한 연출이다.
  사진사는 갈색 사각형 카메라를 조정하며 검정천을 뒤집어쓴 후 계속해서 뭐라 한다. 그러다 정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나와서 소품도 바꾸고 인물 위치도 수정해준다. 한참을 ‘예술가’처럼 ‘연출’을 하더니 드디어 촬영을 시작한다.
  “자~찍습니다. 눈 감지 말고~웃으면서, 하나, 둘, 셋”
  ‘펑’하며 마그네슘 플래시가 터지면서 내는 소리와 강렬한 빛에 놀라 순간 어안이 벙벙하다. 나는 분명히 소리와 빛에 놀라 얼굴이 찡그려지거나 눈을 감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에 울상이다. 그런데 사진사가 구세주처럼  “자 다시 한 번 찍겠습니다. 눈 감지 말고, 웃으면서, 하나, 둘, 셋!”
  나는 이제는 잘 찍혔겠지 하지만 내심 아직도 불안하다. 분명 눈을 감은 기분이다. 사진사는 흡족한지 아주 좋다고만 연발하고 “인물이 좋아서 사진이 잘 나오겠네”  너스레를 떨며 좋다고 하는데 나는 죽을 지경이다. 분명 거금을 들여서 사진을 찍었을 텐데 내가 잘못돼서 다시 찍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사진이 나올 때까지 불안하다.

  며칠 후 드디어 어머니가 사진을 찾아오셨다. 부리나케 사진을 손에 쥐고 본 순간 내가 걱정했던 거보다 훨씬 잘 나왔다. 나는 너무 신기하여 어머니에게 내가 사진 찍을 때 분명 눈을 감았다고 자백(?)을 했는데도 어머니는 말없이 웃기만 하셨다. 어린 내가 봐도 아버지는 훤하게 미남으로 나오시고 어머니는 예쁘셨다. 나 역시 초롱초롱한 눈매와 이목구비가 단정하게 잘 나왔다.

  예전에는 사진 촬영이 큰 행사였다. 평소 사진 촬영이 쉽지도 않았고 비용도 비쌌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사진이 넘쳐나는 시대가 아니기에 더욱 그랬다. 어느 집에 가더라도 대청마루에는 여러 사진을 찍어 액자에 넣어 안방 입구에 걸어둔다. 빛바랜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주로 결혼, 회갑 등 집안 행사를 촬영했거나 군대 시절의 ‘폼’잡고 찍은 사진, 사내아이들은 고추를 훤히 내놓고 찍은 백일 사진 등이 걸려있어 그 집안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며칠 후 궁금증을 못 이긴 나는 기어이 사진관을 찾아갔다. 이웃에 있다 보니 가끔 놀러 가긴 했지만 작심하고 간 건 처음이다.
  사진관 아저씨는 가끔 보는 아이인지라 크게 신경 안 쓰고 무덤덤하게 나  를 맞이한다. 나는 며칠 전 일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된 거냐고 따지듯이 물어봤다. 사진사 아저씨는 말없이 웃기만 하더니 나를 데리고 조그만 방으로 데려 갔다. 방안에는 이런저런 촬영 장비와 현상, 인화 장비들이 있다.

  사진사는 사각형 틀 앞 의자에 앉더니 조그만 원형 유리판 위에 ‘사진원판’ (네가 필름)을 올려놓았다. 원형 유리판 밑에는 전구가 있어 밝은 빛을 내고 있다. 이력서나 맞선을 보기위한 듯 젊은 여자의 독사진이다. 작업을 하다 말았는지 나보고 잘 보라고 한다. 그러더니 연필 같은 펜을 들더니 사진원판에 덧칠하는 게 아닌가. 눈동자며 눈썹이며 볼 살 등을 연필 같은 펜으로 살살 손을 대는데 요즘 말로 하면 ‘포토샵’을 하는 것이다. 생애 최초의 ‘조작’을 알았다. 그때 얻은 경험으로 나는 지금도 사진은 잘 믿지 않는다. 무엇이든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다. 특히 젊은 여성의 사진은 믿지 않는다.

  요즘은 집집이 카메라(휴대폰)가 사람 숫자대로 있다. 필름 카메라처럼 번거롭지 않은 디지털카메라가 유행하다 보니 누구나 사진사고 누구나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야말로 사진 홍수 시대다. 더욱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나 촬영을 쉽게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정작 ‘사진의 맛’은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더욱 스마트폰에 장착된 카메라 성능은 상상을 초월하여 영화를 만들 정도이니 격세지감이다. 요즘 행사장에 가서보면 모든 사람이 스마트 폰을 꺼내 촬영을 하는 통에 전 국민이 카메라맨이 된 듯 하다.

  사진의 홍수 시대에 사는 지금. 갈색 사각형 목제 카메라와 나무 삼각대, 그리고 “펑”하며 터지는 마그네슘 플래시를 두 눈 질끈 감고 찍어도 사진은 두 눈 크게 나온 빛바랜 흑백사진의 마술이 사뭇 그립기만 하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부모님 생각이 나서 예전 사진을 찾아보다 갑자기 목울대가 울컥하다. 그리운 부모님을 사진으로 만이라도 뵈니 그나마 다행이고, 빛바랜 사진이 고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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