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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6-08 10:15
제 57 편 영화촬영 현장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70

제 57 편

영화 촬영 현장

  당시에는 볼거리가 많지 않다 보니 조금만 신기하거나 재미가 있으면 수많은 사람이 구경을 했다.

  내가 살던 종로 6가 이대부속병원에 어느 날 영화 촬영팀이 들이닥쳤다. 그런데 생각보단 단출했다. 남자 배우 두 명과 감독, 촬영기사, 조명, 제작부장만 보인다. 아마 ‘보충촬영’인지 모르겠지만 뜻밖에 스텝들이 적었다. 영국제 ‘오스틴’ 트럭에(나중에 내가 영화를 하며 선배들에게 들은 이야기) 카메라나 조명 장비를 싣고 왔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영화 제목은 ‘수탉 같은 사나이’였다. 이렇게 영화 제목이 지금도 기억나는 이유는 트럭 적재함 천막에 흰 페인트로 ‘수탉 같은 사나이’라고 적혀있고 조명부원의 ‘리플렉터’ (흔히 레프라고 한다)뒷면에 역시 흰색 페인트로 ‘수탉 같은 사나이’라고 적혀있어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반사판은 크기가 전지만하며 두툼한 캔버스 천을 각목으로 두른 후 전면에는 은박지로 발라 빛을 반사하게끔 만든 장치이다. 그 뒷면에 영화 제목을 적은 것이다. 지금 말하면 영화 제목을 널리 알리려고 하는 일종의 ‘마케팅’인 셈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최남현 씨와 누군지는 모르지만, 또 한 명의 남자 배우가 병원을 배경으로 서서 대화를 나누는 짧은 장면이었다. 병원 입구에서는 벌써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며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병원에 사는 특혜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촬영 현장을 구경하는데 참 시시했다. 조감독이 카메라 옆에서 바짝 붙어서 대본을 읽어주는데 배우는 불러주는 대사를 그냥 입으로만 달싹거리며 따라 한다. 감독은 심각한 표정으로 배우를 보다가 ‘엔지’ (NG)하더니 다시 시작한다. 두 번째 촬영은 무난히 끝났다. 감독이 만족한 표정으로 ‘오케이’ (OK)하더니 순식간에 철수해버린다. 어린 내가 봐도 손들이 엄청나게 빠르다. 병원 입구에서 사람들이 구경을 하려고 마음의 준비를 하다가 순식간에 가버리는 스텝들을 보며
  “에이 시시하구먼.”
  하며 뭔가 신 나는 구경거리를 놓친 아쉬움의 발걸음 돌린다. 제작부장은 병원 경비아저씨를 불러 점퍼 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하나 꺼내더니 눈을 깜박이더니 잽싸게 바지 뒷주머니에 찔러준다. 경비 아저씨는 당연하다는 듯 흰 봉투를 받아 챙기고는 영화 잘되라고 덕담까지 한다. 지금 말하면 장소 사용료인 셈이다.

  또 한 번의 영화 촬영 현장을 볼 기회가 있었다. 학교에서 소풍을 창경원(당시에는 그렇게 불렀다)으로 갔는데 점심을 먹은 후 약 두어 시간의 자유시간이 있었다.

  당시 창경원은 놀이 시설이 있어서 아이들은 놀이 기구를 타느라 정신들이 없었다. 나도 놀이기구를 타려고 가는데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곳을 지나게 됐다. 그때는 무조건 사람이 많은 곳에 가야 재미있는 볼거리가 있는 법이다.

  사람들을 헤집고 들어가 보니 유명 영화배우인 박노식 씨가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쪽 다리에 깁스붕대(석고붕대)를 하였다. 아마 촬영 중에 다친 모양이다. 사극을 찍는지 장수 복장을 하고 분장도 했다. 턱에는 수염을 멋지게 붙이고 의자에 길게 눕다시피 있는데 주변에는 온갖 구경꾼들이 박노식 씨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 있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 보는데 보는 내가 다 민망할 정도였다. 간혹 용기를 낸 사람이 ‘사인’을 부탁하기도 하는데 그나마 드물었고 카메라가 흔치 않던 시절이라 사진 촬영도 없었다. 그저 ‘외계인’ 보듯 바라만 보고 있다. 그래도 박노식 씨는 개의치 않고 여유롭게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잠시 후 조감독인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박노식 씨를 휠체어에 태워간다. 사람들은 졸졸거리며 따라가는데 어느 큰 나무 아래까지 갔다. 거기서 본격적인 촬영을 하는데 박노식 씨의 얼굴만 마냥 찍어대고 있다. 소위 ‘클로즈업’만 찍는 것이다. 내가 듣기에는 대사가 뒤죽박죽인데 나중에 편집해서 이어 붙일 모양이다. 내가 나중에 ‘영화판’에서 일할 때 알게 된 거지만 ‘몰아 찍기’를 한 거다. 다리를 다쳐 제대로 찍을 수가 없으니 그렇게 해서라도 유명 배우의 일정을 맞춘 모양이다.

  지금 같으면 사극을 고궁에서 촬영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고 배우를 본다고 ‘동물원 원숭이 보듯’ 사람들이 모여 있지도 않겠지만, 그때는 왜 그렇게 ‘볼거리’에 목이 말랐는지 별거 아닌 것도 구름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오늘날의 한국 영화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게 발전했다. 필자가 소위 ‘영화판’이라는 곳을 처음 나온 게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할 때까지 였 는데 1980년 겨울이었다. 청소년 영화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털보 김응천 감독의 연출부로 들어갔는데 평균 제작비 8천만 원, 촬영일수는 10회를 넘지 않았다. 관객이 4만 명 정도 들면 ‘본전’이라고 했으며 동시녹음은 꿈도 못 꾸었다. 지금 영화계하고 비교한다는 자체가 난센스이지만 당시에는 영화인들이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열심히 했다.
  지금은 영화가 너무 발전해서인가 삭막하기만 하다. 하긴 적당한 예술을 섞고 흥행사업을 거쳐 영화산업으로 진보(?)해서인가? 옛날 영화판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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