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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6-05 10:10
제 54 편 영화를 보다(1)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62

제 54 편

  영화를 보다(1)

  내가 최초로 영화를 본 것은 언제 인지 무슨 영화를 봤는지는 지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분명 기억에 남는 영화는 있다. 바로 ‘서부영화’다.
 
  동네에 친하게 지내는 ‘김창완’이라는 형이 하나 있었다. 창완인지 창환인지는 기억이 가물거린다. 나보다는 다섯 살 위인 동네 형은 이상하게 또래의 친구들하고 지내지 않고 꼭 나를 데리고 잘 놀았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인 1966년에 이미 형은 미아리에 있는 고0중학교 1학년이었다.

  어느 날 형이 집에 오더니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한다. 형을 따라 간 곳은 동대문 운동장을 지나 을지로 입구에 있던 ‘계림극장’이었다. 당시 계림극장은 이류극장이었다. 우리는 처음 개봉을 하면 일류극장, 재개봉관은 이류극장, 동시 상영하는 곳은 삼류극장이라고 나름대로 분류를 하고 있었다. 신작이 아니고 옛날 작품을 상영하다 보니 푯값도 싸고 시설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문제는 입장료였는데 창완형은 학생 표로 할인받고 나는 연소자로 무료입장을 하려다 극장 ‘기도’(문지기)에게 걸려 쫓겨났다. 고민에 빠진 형은 잠시 후 나를 둘러업었다. 그리고는 나보고 최대한 어린이처럼 굴어야 한다고 하고 다시 입장을 시도했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 까까머리 학생이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업고 미취학 아이인 것처럼 해서 극장에 들어가는 모습이 얼마나 어색 했겠는가. 조금 전에 본 극장 기도가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데 거길 통과하기가 여간 조마조마한 게 아니었다. 나는 형의 등에 한 마리 매미
처럼 착 달라붙어 고개를 숙였다. 극장 기도는 고개를 갸웃 둥 하더니 통과시켜주었다. 입장에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군사 작전하듯이 들어가 본 영화는 ‘서부영화’였는데 제목은 ‘황야의 무법자’로 기억이 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이윽고 들어간 극장 안은 처음 보는 대형 스크린에 총천연색 화면으로 그자체가 감동이었다. 서부영화의 이야기는 뻔한 법. 그럼에도 화면에서 눈을 못 떼고 정신없이 영화를 보았다.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온종일 아이들을 붙잡고 어제 본 영화에 대한 ‘변사’ 역할을 영화보다 더 실감 나게 하여 친구들을 감동케 했다.

  두 번째 본 영화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광화문에 있었던 국제극장이었다.
  이윤복이라는 학생이 쓴 수기를 영화로 만든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멜로 영화였다. 지금 식으로 영화를 분류하면 ‘리얼 다큐드라마’라고 할까? 흥행도 됐고 많은 사람의 눈물을 자아낸 ‘최루탄영화’였다. 나는 이 영화를 어머니와 함께 ‘일류극장’인 국제극장에서 관람하였다. 사람들이 많아 한참 줄을 서야 했고 여자어른들은 입장도 하기 전에 이야기하며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 이미 울 준비를 단단히 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훌쩍거리는 소리는 영화가 중반으로 넘어가면 거의 울음 수준이었다. 나중에 는 관객들이 울러 왔는지 영화를 보러 왔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모든 객석이 눈물바다였다. 관람에 방해될 정도였다. 어느 아주머니는 아예 앞 의자에 얼굴을 묻고 통곡수준의 울음을 터트리는데 눈물이 전염성이 있어서인지 앞뒤 할 것 없이 극장 안이 온통 울음바다다.

  이상한 건 나는 울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린 녀석이 울지도 않고 영화를 보니까 나중에 어머니가 ‘너는 눈물도 없느냐’라고 하실 정도였다. 영화가 끝난 후 나오는 관객들의 눈두덩은 한결 같이 퉁퉁 불어 있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언젠가는 나도 저런 영화를 만들어야지 했던 게 결국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밥을 먹고 살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어릴 적의 충격과 기억이 대단하긴 하다.
  그런데 문제는 최루탄 영화를 보면서도 울지 않았던 내가 이제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훌쩍거리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아이러니다. 나이를 먹어서 눈물이 많아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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