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 편
요지경
‘요지경’을 아시는가? 아마 요즘 사람들은 뭔가 알쏭달쏭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때 요지경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오죽하면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대중가요까지 나왔을까 싶다. 그러나 내가 아는 요지경은 유년의 추억에 머물러 있다. 소풍을 가거나 드물게 부모님을 따라 유원지에 놀러 가면 어김없이 나무 그늘에는 요지경 장수가 자리 잡고 있다.
요지경 혹은 만화경은 아이 얼굴 크기만 한 원형 혹은 사각의 플라스틱 장치인데 그 안에 컬러 슬라이드 필름을 넣고 기계 옆에 달린 손잡이를 올리거나 내리면 안에서 호떡 크기만 한 원형 슬라이드 필름이 돌아간다. 이를 마치 망원경 보듯이 두 눈을 통해 보면 그야말로 ‘요지경’의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필름은 보통 열다섯 커트 정도로 구성돼있고 엄지손톱보다 조금 작은 사각 필름을 두툼한 원형 종이에 끼워놓은 형태다.
내용은 주로 세계의 풍경과 도시 등인데 말로만 들은 외국의 풍경이 총천연색으로 펼쳐지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간혹 외국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은 성숙한 여인이 보일라치면 입속에 침이 꼴딱 넘어간다.
정신없이 보다가 시간이 되면 주인은 야속하게 요지경을 뺏어간다.
가끔 요지경 장수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더벅머리’가 있는데 주인이 슬쩍 눈길을 주며 가방 속 깊숙한 곳에서 겉표지가 없는 필름을 전해 준다. 그러면 더벅머리는 얼른 받아 요지경 기계와 함께 다소 떨어진 곳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요지경을 본다. 당시의 내 생각은 아이들이 봐서는 안 되는 ‘뭔가 중요한’ 내용이라 짐작되지만 아마도 ‘도색필름’이 아니었나 싶다. 그야말로 ‘요지경’이다.
한여름. 사람이 많이 모이는 넓은 장소나 유원지 등에서는 ‘물방개’ 놀이를 많이 한다. 자전거 짐칸에다가 지름 약 60㎝, 높이 약 20㎝의 함석으로 만든 원형 물통을 싣고 다닌다. 이 물통 위에는 약 5㎝ 정도를 밖으로 펴낸 후 그 위에는 여러 지명이나 동물 이름 등을 적은 판이 있고 원통 밑에는 약 5㎝ 간격으로 함석을 빗살처럼 이어 붙였다. 원통 바닥 중심에는 조그만 원통이 또 있는데 그 안에는 ‘물방개’를 넣어둔다.
아이들은 돈을 내고 자기가 걸고자 하는 방향에 따라 함석 위 판을 지목한다 가령 부산을 지목하면 물방개 장수는 원통 물통 가운데 있는 물방개를 주걱 같은 걸로 꺼내어 물통 가운데에 나눈다. 그러면 물방개는 이리저리 방향을 잡다 아무 곳이나 간다. 만약 이때 자기가 지목한 쪽으로 오면 다양한 상품을 가져간다. 그러나 어디 물방개가 말을 듣나? 올 듯 올듯하다가 결국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만다. 그때의 낭패감이란….
몇 번 하다가 돈을 다 잃고 나서 오기가 생겨 집에도 안가고 남이 하는 걸 유심히 관찰하는데 남들은 잘만 따간다. 결국, 어둑해질 때까지 안가고 버티면 물방개 장수가 ‘미루꾸’(캐러멜)라도 한 갑 손에 쥐여준다.
눈물젖은 미루꾸를 먹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