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 편
뻥튀기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에 우리를 흥분시키는 일이 있다. 효제초등학교 후문에서 이화동 넘어가는 비교적 큰길가에 어쩌다 한 번씩 ‘뻥튀기’ 장수가 나타난다.
시커먼 무쇠 덩어리 원통 안에 이것저것 곡물을 집어놓고 원통 밑에는 석유 버너로 무쇠를 달군다. 주인이 한참 돌리다가 시계처럼 생긴 무슨 계기판을 보다가 다 됐다고 생각되면 원통 입구를 철사 망으로 만든 그물주머니와 연결한다. 이때쯤 아이들은 벌써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며 손가락으로 귀를 막고 잔뜩 겁먹고 긴장된 표정으로 뻥튀기 장수를 쳐다보는데 이때 아저씨는 쇠막대기를 의기양양하게 들고 큰소리로 외친다.
“뻥이여~ 뻥!”
주인이 쇠막대기로 기계의 뚜껑을 열어젖히는 순간 아이들은 눈을 감으며 귀를 막은 손에 더욱 힘을 준다. 드디어 ‘펑’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림과 동시에 튀겨진 밥풀이 철사 망 주머니 속으로 쏟아져 나오며 흰 연기가 눈앞을 가린다. 그러면 쌀을 갖다 맡긴 사람은 자루를 내밀고 몇 배로 커진 하얀 밥풀을 담는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아이들은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흩어진 밥풀을 주워서 먹기도 하고 담이 큰 아이들은 아예 철망 안쪽으로 손을 넣어 한 움큼씩 집어먹기도 한다. 그러다 뻥튀기 장수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기도 하지만 간혹 마음 착한 손님을 만나면 한 움큼씩 나누어 주기도 한다.
금방 튀겨진 것이라 따끈하며 달콤한 맛이 베여있는 밥풀은 맛이 그만이다. 달콤한 맛이 나는 이유는 무쇠 통 안에 사카린 같은 감미료를 섞었기 때문이다. 쌀이 귀하던 시절이기에 보리쌀, 강냉이 등을 튀기기도 하는데 우리 같은 아이들은 재료가 뭐가 됐든지 개의치 않고 조금씩 얻어먹는 재미로 뻥튀기 장수를 기다린다.
어떤 집 아이는 집에서 신다 버린 고무신이나 빈병, 고철 나부랭이를 가져와 한 바가지씩 바꿔 가는데 이때 뻥튀기 장수는 이미 만들어진 밥풀이나 강냉이 등을 준다. 아마 약간의 고물수집상도 겸했던 같다. 요즘 말로 ‘투잡’을 한 셈이다.
이러다 보니 동네에 뻥튀기 장수가 나타나면 집안에 허접스러운 것들이 남아나질 않는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가져와 바꿔달라고 했다가 주인한테 볼때기를 쥐어 박히고 울고 간 적도 있다.
잘 사는 친구네는 쌀을 몇 됫박씩 가져와 큰 포댓자루로 튀겨 가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 아이는 다음날 학교에 어김없이 밥풀을 온 주머니에 잔뜩 넣고 돌아다니며 순식간에 친구들을 ‘꼬붕’으로 만들어 버린다. 주전부리의 위대함이다. 원래 조막만 한 손으로 한 줌씩 주는데 비위 좋은 친구는 ‘대빵’이 하사하는 한 줌의 밥풀에 만족하지 않고 두 손을 최대한 크게 벌려 바가지처럼 만든 후 머리를 조아리며 읍소하면 선심 쓰듯 두 줌을 준다.
뻥튀기 장수는 지금도 어지간하면 볼 수 있다. 어쩌다 길거리나 공터, 시골 오일장 같은 곳에 가면 볼 수 있는데 나는 아무리 바빠도 ‘펑’ 소리가 날 때까지 지켜보고 온다. 그 긴장도는 어릴 적이나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짜릿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리고는 2천 원어치 정도 사서 갓 튀겨진 따듯한 온기를 느끼며 먹다 보면 왠지 마음이 따듯해짐을 느낀다. 그런데 지금은 뭘 먹어도 예전 그 맛이 안나니 입맛이 변했나? 아니면 감성이 변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