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 23-05-09 11:38
제 37 편 공민학교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155

제 37 편

 공민학교

  내가 다닌 종로 5가에 있는 효제초등학교에는 ‘공민학교’가 같이 있다. 학령기를 놓친 나이 많은 형이나 누나들이 다니던 학교였는데 본관 건물 뒤편 후미진 곳에 1채의 목조 건물이었다.

  건물은 교실 한 칸보다 조금 작은 크기였고 칠판과 책걸상이 있어 그런대로 공부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교단 정 중앙에는 태극기가 액자에 걸려있고 어두운 알전구 하나가 길게 줄을 드리우고 있다.

  입구에는 널빤지에다가 검정 붓글씨로 **공민학교라고 쓰여 있다.
  모든 것이 어설프고 빈약해 보였다. 흔히 어느 학급에나 붙어있는 솜씨자랑이나 알림판 같은 게시물을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이 모두 하교하고 난 후에 목조 건물에서 수업이 이루어 지는데 2~30여명 정도가 수업을 한다. 형들은 턱 밑에 수염이 거뭇거뭇 보이고 누나들은 가슴이 봉긋 올라 처녀티가 완연하다. 그중에는 건물 뒤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교실 입구에는 가지고 온 구두닦이 통들이 가지라니 놓여있고 낡은 가방 속에는 뭐가 들었는지 모르지만 불룩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주로 구두닦이나 신문팔이 혹은 공장에서 ‘시다’를 한다고 했다. 무서운 형들이니 조심해야 한다는데 나는 그 형들이나 누나들이 별로 무섭지 않았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일까? 수업이 끝난 후 집에 갈 생각은 안 하고 괜히 공민학교 교실 근처를 배회하고는 했다.

  수업하는 모습도 숨어서 들여다봤는데 그냥 우리가 배우는 초등학교 과정이었다. 학생들은 졸지 않고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배움에 대한 열기만큼은 정규학교 못지않았다.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공민학교 이야기를 하면 어머니께서는 ‘너는 행복한 줄 알아라.’ 하시며 눈을 흘기셨다. 곰곰이 생각하면 어머니 말씀이 맞다. 그 형들과 누나들은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제때 못해 뒤 늦게라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나는 부모님 잘 만나 정규교육을 받고 있음에도 공부를 게을리 하는 것 같아 속으로 많이 찔렸다. 어머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한 동한 책을 잡고 공부를 열심히 했으나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나는 공부와는 친하지 않은 것 같다.

  공민학교 학생들은 나 같은 정규학교 학생들을 만나도 전혀 꿀리거나 위축되지 않고 당당했다. 나이에 비해 세상을 일찍 깨우쳤는지 뭔가 어른스럽다. 하긴 나이로 봐도 큰 형뻘인데 어린 아이들에게 뭘 기대하겠는가.

  한 번은 공민학교 형 중에 이상한 형을 봤다. 중고생 형들이 입는 교복을 입고 다니는데 썩 잘 어울렸다. 더 이상한 것은 다른 학생들이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는 것이다. 호기심이 왕성한 나는 며칠을 눈여겨보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형에게 물었다. 형은 처음에는 내 질문이 마땅치 않은 듯 대꾸조차 않다가 몇 번을 물어보니 마지못해 대답을 해줬다.

  그 형의 직업은 ‘고학생’이었다. 낮에 전차나 버스에서 승객들을 상대로 볼펜이나 연필 등을 파는 교복 입은 ‘가짜 고학생’이었다. 교복에는 명찰도 교표도 학년 표시도 아무것도 없는 그냥 교복이지만 사람들은 알면서 혹은 모르는 척하며 물건을 사주었다. 내가 한마디 하길 학교도 다니지 않으며 교복을 입으면 안 되는 거 아니냐 하고 따지듯이 물으니 ‘가짜 고학생’ 형은 씩 웃으며 이렇게 행세를 해야 물건이 팔린다고 한다. 이어서 하는 말이 자기는 누구한테 해를 끼치거나 나쁜 짓은 안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할때는 명백한 ‘사기’였다. 그래도 그 형은 착해 보이고 인상이 좋았다. 비록 가짜지만 교복 입은 모습도 좋아보였다. 그런 생각 없이 보면 명문학교에 다닌다고 해도 누구나 믿을 정도였다.거기다 언변도 좋아 내가 생각 할때는  연필과 볼펜을 많이 팔았을 것 같다.

  한 번은 공민학교 쪽이 시끄러웠다. 뭔가 하고 가보니 학생끼리 싸움이 났다. 다른 학생들은 쭉 둘러서서 구경만 하고 둘은 마구 치고받고 하며 코피가 터지도록 싸우는데 잠시 후 선생님이 오셔 뜯어말리고 난 후 싸움이 끝났다. 내가 생각할 때는 어린 나이에 거친 사회에서 험하게 살다 보니 인성이나 감성이 메말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만큼 은 대단하여 침침한 알전구 하나를 등불 삼아 피곤한 몸을 추스르며 공부에 열중하던 형, 누나들은 지금은 뭐 하고 있을까?

  나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가짜 고학생’ 형은 언변이 좋아 아마 최고의 판매사원이 되었을 성 싶고 눈이 동그랗고 귀엽게 생긴 동대문 제품시장 “시다”누나는 좋은 곳으로 시집가서 잘살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전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있겠지만, 옛날 공민학교 다니던 시절에 각오를 생각하면 전부 다 잘되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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