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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5-08 09:42
제 36 편 효제와 육사
글쓴이 : 박감독
조회수 조회 : 198

제 36 편

 효제와 육사

  60년대 중반 효제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학교 운동장에는 아침마다 군용 대형 버스가 들어왔다. 태릉에 있는 육군사관학교에 근무하는 직업군인들의 자녀가 효제초등학교로 통학한 것이다. 요즘 말로 ‘학군’협력이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생이 골고루 있었는데 대략 3~40여 명쯤 된 걸로 기억한다. 내가 다닌 학년과 학급에도 그런 친구가 더러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로 육사에 근무하며 전출을 거의 가지 않는 교수 요원이나 선임 부사관의 자녀였다.
 
  육사에서는 집과 가까운 동대문구에 있는 아무 학교와 협력을 해도 될 일인데 효제라는 명문학교에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2부제, 3부제 수업을 하던 시절이라 일찍 끝난 저학년 학생이나 부제가 맞지 않는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하루 종일 뛰어놀았다. 작대기 2~3개쯤 되는 운전병 아저씨가 아이들의 보모 역할을 하며 같이 놀아 주었다.
  우리는 이런 아이들을 육사 통학생이라고 불렀는데 방과 후에는 무조건 군용 버스를 타고 집을 가야 했기에 방과 후 ‘재미’를 같이 누리지 못하여 친하게 지내지를 못 했다.

  68년이 됐다. 신 학년이 시작됐는데 늘 보던 육사 버스가 학교에 오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다. 알고 보니 68년 3월에 육사 인근에 있던 서울여대에서 화랑초등학교라는 사립 초등학교가 개교되어 다들 전학을 간 것이다.
  화랑이라는 말이 서울여대하고 어울리지도 않았는데 아마 인근에 화랑대역과 육사의 별칭인 ‘화랑대’를 의식하고 학교명을 만든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육사 통학생들이 대거 전학을 가 더 이상 시내에 있는 효제초등학교에 다닐 일이 없어진 것이다. 반 친구들이 몇 명 전학을 가니 자리가 허전했다.

  당시에는 일부 공립 명문학교를 제외하면 비싼 수업료를 내는 만큼 사립학교의 교육 환경이나 시설, 교사가 월등히 우월했다. 화랑초등학교라는 신설 사립 초등학교가 개교했으니 당연히 그쪽으로 전학 가는 게 맞기는 하겠지만 왠지 서운했다.

  육사 통학생 중에는 지금도 만나는 친구가 있다. 한 친구는 사실 초등학교 1년 선배인데 화랑초등학교로 전학을 가며 1년 아래 아이들과 다녀 졸업은 같이 했다. 이 친구를 중학교 때 동기로 다시 만나 3년을 참 친하게 지냈다. 고교 졸업 후 1977년 육사 3*기를 수석으로 입학하여 육사 교수 요원으로 있다가 중령으로 예편하였다.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장래가 촉망되던 친구인데 음악과 풍류를 좋아하던 군인 같지 않은 군인이었다.

  또 다른 친구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동창회에서 만났다. 재수하여 육사 3*기로 입교했는데 대령으로 전역 하였다. 두 친구의 아버님은 육사 교수로 근무하여 집안끼리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다. 능력 있고 훌륭한 대령이 장성 진급을 못 하고 전역하는 게 못내 아쉽기만 하다. 별을 단다는 게 꼭 개인의 능력만은 아닌 듯싶다.

  지금도 가끔 운동장 안쪽에 차를 세워놓고 마냥 졸고 있던 운전병 아저씨가 생각나고 형, 누나를 기다리며 자기들끼리 놀이터에서 놀던 저학년 아이들도 생각이 난다. 군인 자녀라 그런지 여느 아이들과 다르게 비교적 깔끔하게 입고 다니며 새침을 떼며 재잘거리던 아이도 생각이 난다.

  어른이 되어 만난 동창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나의 기억력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상하리만치 이런 ‘쓸데없는’ 걸 기억해 내 친구들에게 한소리를 듣기도 한지만 나는 영원히 잊지 않고 싶다. 혹시 그때 육사를 진학했었다면 소위 말하는 별을 달았을까? 내 자신이 궁금하다. 군이 내 체질에 맞긴 맞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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